부산은 지인의 결혼식 축사를 위해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하루밖에 돌아보지 못했는데 흥미로운 공간이 넘쳤습니다.
그때의 기억이 좋아 이번 와이프와 함께 여름휴가를 다녀왔습니다.
정말 뜨거웠습니다.
습기 때문에 땀이 줄줄 흐르고
뜨거운 공기 때문에 숨이 막혔습니다.
큰 덩치의 사나이들이 멋들어진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갔습니다.
부산 사람들은 왠지 모르게 아무렇지 않아 보였습니다.
도착한 날 밤 숙소 근처의 서면 골목에 가득찬 열기는 엄청났습니다.
클럽이 모여 있는 곳인지 몰랐는데 사람이 바글바글했습니다.
멋대로 입은 것 같은데 이상하게 어울리는 패션의 사람들이
출처를 알 수 없는 스타일의 가게를 오갔습니다.
제대로 본 부산의 첫인상은 뜨겁고 거칠면서 자신만의 멋을 따르는 곳이었습니다.
빈티지의 성지
가장 기억에 남는 지역은 전포입니다. 처음 부산에 왔을 때도 곳곳에 숨어 있는 멋진 빈티지 가게에 놀랐습니다.
길목에 있는 유명한 브런치 카페와 굿즈 샵의 인테리어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부산의 빈티지는 남포동 국제 시장 구제 골목에서 시작했다고 합니다.
국제 항구로서 다양한 나라의 옷이 한곳에 모였고
꾼들은 옛날부터 최적화된 동선까지 생각해서 가치 있는 옷을 싹슬이했다고 하네요.
남포동 시기의 옷을 사랑하던 키즈들이 독립해
부산 전역에 하나씩 자신만의 매장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서울은 미국과 유럽의 빈티지나 명품 브랜드의 빈티지가 많다면
부산은 미국 스타일을 일본에 알맞게 재해석한 ‘아메카지’ 빈티지가 많았습니다.
샵마다 추구하는 방향이 다른 것도 신기했습니다.
어떤 샵은 브랜드를 추구하고 어떤 샵은 스타일을 추구합니다.
미국 서부 스타일, 아방가르드한 코어 스타일을 추구하는 가게가 있는가 하면
포터같은 현대적인 브랜드를 재해석하거나 아카이브가 쌓은 브랜드의 빈티지를 준비한 가게도 있었습니다.
옷 스타일에 어울리게 꾸며진 인테리어를 보는 즐거움도 컸습니다.
평소 옷에 크게 관심이 두지 않았는데
멋진 빈티지 옷에 큰 영감을 받아 패션의 세계에 새롭게 눈을 떴습니다.
역시 심혈을 기울여 고르고 만들어낸 창작물이 전하는 강한 에너지가 있네요.
함께 성장하는 로컬 브랜드
부산에는 대기업 대신 로컬 브랜드가 많다고 합니다.
모모스 커피나 삼진 어묵의 이야기를 여러 매체를 통해 접했습니다.
이번 여행에도 꼭 로스터리를 방문해야겠다 마음 먹었습니다.
모모스 커피는 스페셜티 커피로 유명한 부산을 대표하는 브랜드입니다.
월드 바리스타 챔피원십의 한국인 최초 우승자인 전주연 바리스타의 이야기가 유명하죠.
2007년 아르바이트 직원으로 연을 맺어 모모스 커피와 함께 ‘세계 1등 커피를 만들자’는 목표를 이뤘습니다.
자신의 이름값이 커지면 독립해서 카페를 차리는 경우가 많은데
끝까지 모모스와 함께 하겠다는 말이 멋졌습니다.
모모스는 일반적인 카페의 운영 방식을 벗어납니다.
바리스타가 카페에서 박봉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은데
최소 좋은 중견 기업 직원만큼 대우를 받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하죠.
10년이 넘었다면 10년 넘게 일한 직원이 있어야 한다는 철학이 진심으로 느껴졌습니다.
능력주의로 사람을 빠르게 교체하는 서울과 판교 기반 스타트업과는 다른 경영 철학이 신선했습니다.
함께 목표를 이뤄가는 모습이 진정한 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테라로사의 뒤를 잇는 규모의 부울경 대표 스페셜티 커피 ‘블랙업 커피’, 독특한 인테리어와 디자인이 매력적인 인디 커피의 상징 ‘베르크 로스터리’도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커피 외에도 부산에서 새롭게 떠오른 음식은 ‘어묵’입니다. 한국 어묵은 저렴한 음식이라는 인식을 깨기 위한 도전이 매력적이었습니다. 1953년 부산 영도 부근에서 시작해 1대 고 박재덕 창업주와 2대 박종수 회장에 이어 3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2022년 인터뷰를 따르면 9년전인 2011년에 비해 매출이 25억에서 800억으로 늘고 직원 수는 30명에서 600명으로 늘었다고 밝혔습니다.
일반적으로 일본 어묵보다 저급이라 평가 받던 한국 어묵을
좋은 품질로 고급 브랜드로 위상을 높였습니다.
3대째에 들어서 ‘베이커리형 어묵’이라는 신선한 방식으로 임팩트를 만들었습니다.
부산을 대표하는 프리미엄 베이커리 ‘겐츠 베이커리’와 1949년 창사 이래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온 ‘송월타월’도 기회가 된다면 파보고 싶네요.
만두 파이터로 만든 초량
부산역 건너편 초량에는 맛집이 가득합니다.
요상한 분위기의 텍사스 스트리트를 지나면
차이나 타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화교들이 모여 있는 이 곳에는 만두가 특히 유명합니다.
올드보이에 나왔던 군만두 집인 ‘장성향’은 왠지 끌리지 않아
줄이 너무 길어 항상 실패했던 ‘신발원’에 방문했습니다.
운이 좋게 마감 직전에 들어가서 드디어 먹어 볼 수 있었습니다.
신발원의 만두는 물기가 적고 만두피가 쫀쫀합니다.
만두 세트와 군만두를 따로 더 시켰는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기 만두, 찐교자, 새우 교자가 함께 나왔는데
새우 교자는 예상하지 못한 커다란 새우가 들어 있어
풍미가 넘치면서 먹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군만두는 과자처럼 바스락 거리는데 거칠지 않았고
마치 포춘 쿠키처럼 모양이 유지되었습니다.
바로 옆에 있는 또 다른 맛집 ‘마가 만두’의
육즙 가득한 중국식 만두도 매력적이었는데
신발원이 취향에 더 맞았습니다.
만두 외에도 날씨가 너무 덥고 끈적거려서 시원한 탕을 많이 찾은 것 같습니다.
한국에 맞게 변형되지 않은 중식을 먹고 싶어 찾아보니
‘홍성방’이 가장 한국 같지 않았습니다.
삼선탕면과 볶음밥을 시켰는데 상상만해도 침이 고일 정도로 너무 맛있었습니다.
삼선탕면은 진한 육수의 국물과 해삼과 야채가 깔끔하게 어우러졌습니다.
면도 쫄깃해서 거의 우동 같이 느껴졌습니다.
볶음밥도 단순히 기름에 절여진 밥과 칵테일 새우 범벅이 아니라
웍에 볶은 정통 볶음밥 맛이라 허겁지겁 먹어 치웠네요.
2개 지점이 있는데 본관보다는 본점이 괜찮은 것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