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은 지난 화요일 공개한 새로운 M4 iPad Pro를 홍보하는 ‘Crush!’라는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어둡고 거대한 공간에 피아노, 레코드 플레이어, 조각상, 물감, 텔레비전 등 다양한 물건이 놓여 있습니다. 물건들 위에는 거대한 철판이 불안하게 떠 있습니다. 레코드 플레이어에서 소니 앤 셰어의 ‘All I ever need is you’라는 노래가 천천히 유압 프레스가 내려옵니다. 트럼펫이 찌그러지고 페인트통이 터지면서 사방에 튀깁니다. 인간이 만든 다양한 창작물을 상징하는 물건들이 깨지고 짓눌리며 폭발합니다. 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유압기가 완전히 내려오고 남은 것은 신형 아이패드 프로입니다.
다양한 창작 활동을 아이패드 프로 하나로 할 수 있다는 은유입니다. 하지만 반응은 차갑습니다. 다양한 창작 집단과 미디어의 거센 항의를 받았고 휴 그랜트는 이 광고를 “인간 경험의 파괴”라고 반응했습니다. 결국 애플의 마케팅 부사장 Tor Myhren은 “우리의 목표는 사용자가 iPad를 통해 자신과 아이디어를 생생하게 표현하는 다양한 방식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이번 영상에서 목표를 놓쳤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하고 TV 광고 게재를 취소했습니다.
이번에는 애플이 눈치가 너무 없었습니다. 최근 AI가 발달하면서 ‘실직’에 관한 공포가 어느 때보다 높았죠. 이런 상황에 인간의 창작을 상징하는 물건을 기술이 파괴하고 아이패드 프로만 남는 영상은 은유적이지 않고 직설적으로 느껴집니다. 애플이 기술로 인간을 파괴하고 정복하겠다는 것처럼 읽히죠.
맥락에 따라 같은 표현도 다르게 받아들여집니다. 하나의 기기로 여러 기능을 수행하는 것을 표현할 때 자주 쓰던 방법이죠. 이미 15년 전에 LG가 만든 유사한 영상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다릅니다. 창작 활동이 압축된 것 대신 창작 활동이 파괴하는 것이 더 부각되었습니다. 오히려 9년 전 ‘데스크의 진화’ 영상이 의도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