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명동 버스 대란: 실패한 UX 디자인

서울시가 27일부터 중구 ‘명동입구’ 광역 버스 정류장에 도입했던 ‘노선별 대기판’ 운영을 9일 만에 중단했습니다.

본래 광역 버스 정류장은 바닥에 적힌 노선 번호에 맞게 줄을 섰습니다. 사람이 많을 때는 꼭 정해진 바닥에 줄을 서지 않았습니다. 버스도 상황에 따라 정류장 근처에 정차했습니다.

최근 이태원 참사 이후 안전을 위해 광역 버스 입석을 금지했고 명동입구에 정차하는 성남, 용인, 수원,. 화성 등 경기도행 광역 버스가 29개로 늘었습니다. 대기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정해진 위치에 줄을 섰는데 내 위치에 서지 않아서 우왕좌왕해야 했습니다.

명동 by 네이버 지도
명동 by 네이버 거리뷰

그래서 서울시는 노선별 대기판 13개를 1m 간격으로 세웠습니다. 비슷한 방향의 노선을 2~3개 묶어서 정차 장소로 지정했습니다.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이전에는 5분 정도 기다리면 탈 수 있었던 버스를 1시간 넘게 기다려야 했습니다.

정류소 주차 공간도 1m 간격으로 좁아 버스가 진입하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차선이 좁아 주차했던 버스가 출차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늘었습니다. 자신의 자리에 정차하기 위해 앞 버스가 떠날 때까지 기다려야했습니다. 대기 시간이 곱셈으로 늘어나는 구조인 것입니다.

디지털 프로덕트를 설계할 때 자주 겪는 문제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비스 설계자가 고객이 아니라 공급자 중심으로 생각하고 근본 원인 대신 낱개의 원인을 개별로 해결할 때 자주 생깁니다.

상위 조직에서 하위 조직에게 ‘근본 원인을 해결 못 하니까 제어 가능한 범위에서 해결하라’고 임무를 줍니다. 하달 받은 임무를 내가 가진 권한 내에서 해결하려다 보면 내가 할 수 있는 ‘상식적인’ 방법을 실행하게 됩니다.

관리자 관점에서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혼란이 커질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류장 관리자는 ‘비슷한 목적지별로 사람들을 묶자’라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사용자가 목적지로 가는 버스에 탄다.’라는 가장 중요한 핵심 과업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버스가 수용하는 인원이 적어졌다’라는 근본 원인에 맞춰 문제를 보지 못하고 ‘정류장에 사람이 많다’ 에만 집중해 생긴 문제로 보입니다.

정류장에 사람이 많아 안전이 우려됐다면 사람들을 질서정연하게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정류장에 있는 사람의 수를 줄이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었을 것입니다. 정류장에 있는 사람 수를 줄이려면 정류장의 크기를 키우거나 정차하는 버스를 줄이거나 버스가 승객을 태우는 속도가 더 빠르게 만들어야 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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