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벤츠가 포장마차에 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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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전유만이 문제일까?

벤츠의 전기 C클래스 월드 프리미어가 화제가 됐습니다. 이유는 차보다 무대였습니다. 신형 전기차를 공개하는 행사장에 포장마차, 노래방, 네온사인, 한국식 거리 풍경이 등장했습니다. 해외 관점에서는 한국의 밤거리와 포장마차가 이국적이고 멋진 장면처럼 보였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인 관점에서는 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동네 포차 앞에 벤츠를 세워두는 장면이 특별히 힙하거나 선망의 대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는 한국적인 장면일 수 있지만 한국인에게는 그냥 익숙한 일상에 가까웠습니다.

이런 현상은 문화적 전유와도 연결해 볼 수 있습니다. 문화적 전유는 힘이나 영향력이 더 큰 집단이 다른 문화권의 상징, 스타일, 전통, 표현 방식을 맥락 이해 없이 가져다 쓰거나 상업적으로 소비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만 이번 사례를 단순히 문화적 전유로만 보기는 어렵습니다. 핵심은 한국 문화를 썼다는 사실보다, 그 문화 요소가 벤츠라는 브랜드와 전기 C클래스라는 제품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제대로 연결되지 않았다는 점에 있습니다.

키워드만 놓고 보면 나쁜 아이디어는 아닙니다. 럭셔리 브랜드가 거친 스트리트 무드나 캐주얼한 문화를 끌어오는 일은 자주 있습니다. 한국 문화의 글로벌 인지도도 높습니다. 한글 간판, 밤거리, 식문화, 네온사인 같은 요소는 시각적으로 강한 인상을 줍니다. 전기 C클래스가 기존 플래그십 세단보다 젊고 캐주얼한 감각을 강조하려 했다면, 이런 요소를 활용할 여지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좋은 재료가 좋은 장면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주인공보다 배경이 더 커진 무대

이번 발표에서 가장 큰 문제는 무대 연출이었습니다. 벤츠는 오랫동안 ‘감각적 순수함’이라는 디자인 철학을 이야기해온 브랜드입니다. 신차 발표라면 전기 C클래스의 비례, 전면부, 실내 디스플레이, 조명, 전동화 기술이 중심에 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포장마차, 노래방 간판, 네온사인 같은 배경 요소가 더 강하게 보였습니다. 차를 설명해야 할 무대가 차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시선이 제품에서 벗어났습니다.

배경이 주인공보다 커지면 인지 부조화가 생깁니다. 관객은 “새로운 전기 C클래스가 어떤 차인가”보다 “왜 벤츠가 포장마차에 있지?”를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한국 문화 요소가 브랜드와 제품을 보조하는 장치가 아니라, 행사 전체를 지배하는 이미지가 된 것입니다. 만약 자동차와 포장마차 사이에 강한 내러티브가 있었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밤길, 도시 이동성, 일상 속 전동화, 새로운 세대의 라이프스타일 같은 연결 고리가 분명했다면 콘셉트가 설득력을 얻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무대에서는 감각적 순수함, 전기차, 포장마차, 노래방, 골프백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흩어져 있었습니다.

시각 연출도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한국 밤거리의 매력은 어둠 속에서 번지는 간판의 빛, 골목의 밀도, 사람 사이의 온도에서 나옵니다. 하지만 신차 발표 무대에서는 차량을 비추는 강한 조명과 세트 장치가 이 분위기를 살리지 못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밤거리도 충분히 아름답게 보이지 않았고, 자동차도 고급스럽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포장마차에서 바텐더처럼 술을 따르는 장면이나, 포차 앞에서 골프백을 꺼내는 장면은 콘셉트의 연결성을 더 약하게 만들었습니다. 한국적이면서도 벤츠다운 장면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이미지를 한 공간에 억지로 배치한 듯한 인상을 줬습니다.

진짜 문제는 연출 완성도

이번 일은 외국인이 보는 한국과 한국인이 보는 한국 사이의 괴리만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더 큰 문제는 메시지 설계와 연출의 완성도였습니다. 기존의 럭셔리 문법을 반복했다면 안전했을 것입니다. 고급 호텔, 미니멀한 조명, 정제된 무대, 느린 카메라워크를 사용했다면 논란은 적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눈에 띄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벤츠가 한국 문화를 활용해 새로운 장면을 만들려 한 시도 자체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다만 새로운 시도일수록 요소 간 연결이 더 중요합니다. 로컬 문화를 쓰려면 단순히 알아보기 쉬운 상징을 가져오는 데서 끝나면 안 됩니다. 왜 이 장소여야 하는지, 왜 이 문화가 이 차와 연결되는지, 왜 이 브랜드가 이 장면을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설계가 필요합니다. 이번 발표는 그 연결 고리가 약했습니다. 한국 문화는 강하게 드러났지만, 벤츠의 디자인 철학과 전기 C클래스의 상품성은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콘셉트가 과감하게 느껴지기보다 조악하게 느껴졌습니다.

다른 홍보 영상이나 이미지에서는 콘셉트의 가능성도 보입니다. 한국의 밤거리, 도시의 이동, 젊은 세대의 감각, 전기차의 조용한 주행감을 잘 엮었다면 충분히 매력적인 캠페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월드 프리미어라는 가장 중요한 무대에서 그 가능성이 설득력 있게 구현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문화를 존중해 주인공으로 활용하려 했다면 더 세밀한 조사와 해석이 필요했습니다. 로컬 문화는 장식이 아니라 맥락입니다. 그 맥락을 브랜드의 언어로 번역하지 못하면, 가장 강한 소재가 가장 큰 방해물이 될 수 있습니다.

박종민
프리랜서에서 유니콘급 스타트업 헤드 오브 디자인까지. 18년 넘게 브랜드와 프로덕트를 디자인하며 임팩트를 만들어 왔습니다. 현재는 디자인 나침반 CEO이자 편집장으로서 비즈니스 임팩트를 내는 디자인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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