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가장 필요한 디자인 미학 세우기

요즘 디자인 연구와 학습에 관한 생각을 많이 합니다. 실무에서 직접 실험할 수 있는 것들을 실행하고, 동시에 디자인 자체를 연구하고 전파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새로운 학습이 무엇인지 디자이너가 지금 어떤 방식으로 성장해야 하는지 자주 생각하게 됩니다. 기술을 모르면 현시대의 기대를 뛰어넘는 결과를 만들기 어렵습니다. AI처럼 새로운 기술은 디자인의 방식과 기준을 계속 바꿉니다. 문제는 변화가 너무 빠르고 배워야 할 내용이 너무 많다는 데 있습니다.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혼란이 쌓입니다.

이 혼란을 제어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시대의 변화가 나에게 불리한 압박이 아니라, 오히려 유리한 조건이 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술은 계속 바뀝니다. 도구도 바뀌고, 플랫폼도 바뀌고, 일하는 방식도 바뀝니다. 하지만 뛰어난 디자인을 설계하는 사람들은 시대 변화에 쉽게 휩쓸리지 않습니다. 유행을 빠르게 이해하되, 유행 자체에 기대지는 않습니다. 변화 속에서도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판단하고 움직입니다.

그 단단함의 중심에는 디자인 미학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학의 씨앗

미학이라는 단어는 어렵게 들립니다. 철학적이고, 추상적이고, 일상과 멀리 있는 말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자기 안에 미학의 씨앗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형태가 좋은지, 어떤 흐름이 자연스러운지, 어떤 경험이 더 나은지 느끼는 감각이 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언어로 정리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처음에는 본능만으로도 충분히 작업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 드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고, 감각적으로 선택하고,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한계가 옵니다. 다루는 맥락이 바뀌거나, 일의 규모가 커지거나, 함께 일하는 사람이 많아지거나, 내가 성장하면서 기준 자체가 흔들릴 때가 옵니다.

그때 필요한 것이 언어화된 미학입니다.

미학의 언어화

디자이너는 자신이 섬세하게 느낀 것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다른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형태로 전달하는 사람입니다. 탁월한 디자이너는 자신이 생각하는 ‘좋음’이 무엇인지 정의하고, 더 나은 좋음을 향해 계속 밀고 나가는 사람입니다.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좋음을 구체적으로 아는 일에 가깝습니다. 왜 이것이 좋은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다른 맥락에서도 그 좋음을 다시 구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감각이 우연히 맞아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복해서 재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 디자인은 개인의 취향을 넘어 하나의 기준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취향’이라는 말보다 ‘미학’이라는 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취향은 내가 좋아하는 것에 머물기 쉽습니다. 반면 미학은 내가 왜 그것을 좋다고 느끼는지, 그 좋음이 어떤 조건에서 작동하는지, 다른 사람에게 어떤 경험으로 전달될 수 있는지까지 포함합니다.

자신만의 미학을 세우는 일은 단순히 마음에 드는 이미지를 많이 모으는 것과 다릅니다. 레퍼런스를 많이 저장하는 것은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내 머릿속에 구조로 남지 않으면 빠르게 휘발됩니다. 많이 봤지만 설명할 수 없고, 많이 모았지만 적용할 수 없다면 그것은 아직 나의 미학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수집보다 해석입니다. 무엇이 마음에 들었는지, 왜 끌렸는지, 어떤 맥락에서 작동했는지, 내가 다시 사용하고 싶은 원리는 무엇인지 정리해야 합니다. 그렇게 정리된 언어가 쌓일수록 변화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기준이 생깁니다.

나만의 미학 세우기

웹과 모바일이 성장하던 시기에도 비슷한 혼란이 있었습니다. 클라우드와 SaaS가 확산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디자이너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앞으로 무엇이 가치 있을지 다시 판단해야 했습니다. 그때마다 방향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결국 내가 어떤 디자인을 좋은 디자인이라고 믿는지 계속 언어화해왔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AI가 디자인의 속도를 바꾸고, 도구가 결과물을 더 쉽게 만들고, 평균적인 완성도가 빠르게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는 더 많은 도구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판단의 기준을 갖는 일입니다. 무엇을 만들 것인지, 왜 그렇게 만들어야 하는지, 어떤 경험을 더 좋다고 말할 수 있는지 스스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미학은 혼란을 붙잡는 기둥입니다. 기술이 바뀌어도 내가 추구하는 좋음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면 변화는 위협이 아니라 재료가 됩니다. 새로운 도구는 나를 흔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좋음을 더 빠르고 넓게 실험하게 해주는 수단이 됩니다.

요즘 같은 시기에는 이 작업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변화 속에서 나만의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으로 더 나은 것을 설계하기 위한 토대입니다.

박종민
프리랜서에서 유니콘급 스타트업 헤드 오브 디자인까지. 18년 넘게 브랜드와 프로덕트를 디자인하며 임팩트를 만들어 왔습니다. 현재는 디자인 나침반 CEO이자 편집장으로서 비즈니스 임팩트를 내는 디자인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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