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예술이 살아 있는 빛고을

여행이 너무 가고 싶어서 근질근질하던 때였습니다. 멀리 떠나기는 쉽지 않았고 국내 여행으로 마음속에 벼르고 있던 광주에 다녀왔습니다.

아기와 함께하는 여행이라 짐도 많고 챙길 것도 많았습니다. 출발 전에는 매 순간 힘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의외로 할만했습니다. 아이가 얌전하게 잘 먹고 잘 자준 덕분이었습니다. 이번 여행을 마치고 나니 빠른 시일 안에 해외여행도 가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졌습니다.

도시 속 살아있는 예술

광주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묘한 분위기였습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어딘가 베를린의 향기가 있었습니다. 무심한 듯한 흑백 패션에서부터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도시 곳곳에는 예술이 숨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흔히 도시가 만든 공공미술과는 결이 달랐습니다. 장식처럼 놓인 작업물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쓰고 지나가고 머무는 풍경 안에 있었습니다.

보통 이런 작업물은 변두리에 세워진 기념물처럼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의 일상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존재만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광주의 예술은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 숨 쉬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상상 이상이었던 아시아문화전당

그 끝판왕은 아시아문화전당이었습니다. 워낙 건축을 칭찬하는 말을 많이 들어서 어느 정도일까 궁금했습니다. 실제로 보니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아시아문화전당은 도심 한복판에 있습니다. 처음에는 건물이 잘 보이지 않아서 의아했습니다. 눈앞에는 공원처럼 열린 공간만 보였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여러 시설은 지하에 층층이 들어가 있고 표면은 시민들이 언제든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원처럼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넓은 잔디밭에는 해가 지고 바람이 선선해질 때 사람들이 돗자리를 깔고 앉았습니다. 공간은 살짝 경사가 있어서 앉는 자리마다 보이는 풍경이 달랐습니다. 단순히 멋진 건축물을 보는 경험이 아니라 도시의 한복판에 이렇게 열린 장소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어떻게 이런 건축이 가능했을까 계속 생각하게 됐습니다.

좋아하던 이함 캠퍼스를 지은 두양 아저씨의 컬렉션 전시도 볼 수 있었습니다. 전시를 보면서 언젠가 나도 두양 아저씨처럼 사람들에게 좋은 작품을 공유할 수 있을 정도의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명불허전 호남의 맛

음식은 말할 것도 없이 맛있었습니다. 여러 프랜차이즈가 도대체 어디 맛을 연구했나 싶었는데 어쩌면 죄다 호남 지역이었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광주를 대표하는 오리탕, 육전, 떡갈비는 명불허전이었습니다. 애호박찌개나 상추튀김 같은 음식들도 훌륭했습니다. 무엇보다 밑반찬의 수준이 높았습니다. 메인 메뉴가 나오기 전부터 밑반찬을 먹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유명한 지역 베이커리의 대표 메뉴도 먹어봤습니다. 지역 베이커리 맛이 다 비슷하지 않을까 지레짐작했는데 확실히 특색이 있었습니다.

결국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 쉽게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을 다시 느꼈습니다. 유명한 곳, 의미 있는 것, 오래 쌓인 헤리티지가 있는 것은 직접 가서 경험했을 때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매너리즘에 빠지면 모든 것이 다 비슷해 보입니다. “다 똑같지 뭐”라는 말이 쉽게 나옵니다. 그런데 그 함정에 빠지지 않고 계속 호기심을 갖고 보면 다릅니다. 무엇이 다른지 집중해서 살피면 생각보다 많은 즐거움이 숨어 있습니다. 이번 광주 여행에서 그 감각을 다시 배웠습니다.

내가 몰랐던 현재의 광주

광주는 그동안 제게 아픈 역사를 이겨낸 대단한 용기와 희생의 도시였습니다. 물론 그 의미는 여전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는 지금 현재의 광주를 새롭게 알 수 있었습니다.

넓은 평야라 걷기 좋았고 건축물들이 우악스럽게 몰려 있지 않아 답답하지 않았습니다. 길을 걷다 중간중간 폴리라는 예술 조형물을 발견하는 것도 즐거웠습니다. 길가에서 만난 가게 하나하나도 깔끔했습니다.

말바우시장에도 들렀는데 시장 규모가 커서 한 번 놀랐고 너무 정갈해서 또 놀랐습니다.

물고기 배열부터 가격표까지 깔끔했습니다. 과일을 담는 상자조차 감성적인 나무 상자였습니다. 길가의 리어카도 깔끔하게 개조되어 있었습니다. 생선 구역에 파리가 거의 보이지 않는 것도 놀라웠습니다. 시장을 걷는 내내 광주는 미감이 남다른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광주 여행은 국내 여행에 대한 기대를 더 키워준 시간이었습니다. 멀리 떠나야만 새로운 것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까운 곳에도 충분히 낯설고 멋진 경험이 있었습니다.

다음에는 조금 더 큰 아이와 함께 다시 와보고 싶습니다. 그때는 이번에 내가 느꼈던 광주의 풍경과 맛과 공간을 아이도 자기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박종민
프리랜서에서 유니콘급 스타트업 헤드 오브 디자인까지. 18년 넘게 브랜드와 프로덕트를 디자인하며 임팩트를 만들어 왔습니다. 현재는 디자인 나침반 CEO이자 편집장으로서 비즈니스 임팩트를 내는 디자인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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