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이 제작하고 넷플릭스가 배급한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는 케이팝 아이돌 그룹이 악마 사냥꾼으로 이중생활을 한다는 독특한 설정의 작품입니다.
매기 강 감독과 크리스 아펠한스 감독이 공동 연출한 이 영화는 한국의 신화, 샤머니즘, 대중문화, 악마학까지 아우르며, 시각적으로도 독창적이고 문화적으로도 밀도 높은 세계를 구축했습니다. 케이팝의 화려한 퍼포먼스와 초자연적 판타지를 접목한 이 작품은 기존 장르의 문법을 뛰어넘는 새로운 미학으로 넷플릭스 공개 이후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성공은 ‘문화적 진정성’을 중심에 둔 디자인과 세계관에 있습니다. 한국적 정체성을 억지로 밀어 넣거나 장식으로 차용하지 않고, 서사의 중심 구조에 자연스럽게 통합해 전통과 현대를 연결했습니다.
이번 아티클에서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한국만의 고유하고 독창적인 디자인 요소, 케이팝 미학, 악마 사냥 장르를 융합해 강력한 세계관을 만들어 냈는지 분석해 보았습니다.
케이팝 아이돌과 한국 무속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세계관과 캐릭터 설정은 한국 전통 신화와 민속 신앙을 깊이 있게 반영됐습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제주 설화로 주인공들이 퇴마 능력을 각성하는 장소가 바로 제주도입니다. 제주의 전통 묘지인 산담과 돌하르방이 등장하고, 설문대 할망, 자청비, 금백조 등 제주 신화 속 여신들의 존재가 은근히 암시됩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감독 ‘매기 강’은 헌트릭스의 개념이 한국 샤머니즘, 특히 굿 의식에서 직접적인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굿은 무당이 음악, 춤, 의상, 주문을 활용해 악령을 몰아내는 역동적인 의식이며, 영화는 이러한 고대 의식과 현대 케이팝 콘서트 사이의 유사점을 강조합니다.


설정에 따르면 최초의 악마 사냥꾼은 샤먼이었으며, 그들이 사용하던 도구는 시간이 흐르며 무대용 무기로 진화하였습니다. 헌트릭스의 세 멤버는 대대로 무속 신앙을 계승해온 무당 가문의 후예라는 설정을 통해 서울을 무대로 전통을 이어갑니다. 이들은 노래와 춤을 통해 악귀에 씐 이들의 혼을 달래고 정화하는 능력을 지녔습니다.
반면, 적대자인 사자보이즈는 ‘저승사자’를 뜻하는 사자(使者)의 이중적 의미를 이름에 담고 있으며, 팬들의 혼을 빼앗는 저승사자 보이그룹이라는 설정으로 등장합니다. 이들은 전통 설화 속 도깨비와 악령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존재들로 묘사됩니다.
극 중 중요한 요소인 혼문(魂紋)은 악귀를 봉인하는 장치입니다. 아이돌의 노래와 감정 에너지로 생성되는 일종의 영적 결계로, 시각적으로는 부적 무늬처럼 표현됩니다. 아이돌의 목소리가 혼문을 유지하는 힘의 원천이라는 점은 샤머니즘적 유산이 현대적으로 계승되었음을 보여줍니다.
헌트릭스, 무당과 굿
헌트릭스의 세 멤버인 루미(리더, 리드 보컬), 미라(비주얼, 메인 댄서), 조이(메인 래퍼, 막내)는 ITZY, 블랙핑크, 트와이스 등 실제 케이팝 걸그룹에서 명확한 영감을 받아 디자인되었습니다. 루미의 스타일은 블랙핑크 제니의 Kill This Love 활동 당시 이미지에서 영향을 받았으며, 미라는 한국 모델 안소연의 분위기를 반영해 만들어졌습니다.

노리개와 매듭
헌트릭스의 의상은 현대적인 케이팝 의상 위에 한국 전통 장신구를 더했습니다. 이들의 무대복에는 한복 장신구인 노리개가 액세서리처럼 달려 있으며, 이는 한복의 우아한 미감과 여성성을 살리면서도 캐릭터에 한국적인 영험함과 정체성을 부여하는 시각적 장치로 작용합니다.
작품 속에서는 ‘저고리 시스터즈’라는 이름의 가상 1세대 걸그룹도 등장하는데, 저고리라는 한복 상의를 이름으로 삼은 이 설정은 위트 있는 방식으로 전통 복식을 소환하며 세계관의 풍성함을 더합니다. 이처럼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의상 디자인은 ‘케이팝 × 오컬트’라는 작품의 미적 정체성을 구축하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아이돌 하면 떠오르는 상징적인 물건인 응원봉 역시 노리개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한국 매듭으로 만들어진 디자인으로 헌트릭스 세 멤버와 팬들의 얽힌 연결을 상징합니다. 이러한 통일성은 콘서트에서 팬들이 “손바닥 안에서” 통일감과 연결감을 느끼는 방식으로 시각적으로 강조됩니다.

의미가 담긴 전통 무기
헌트릭스의 각 멤버는 한국 전통 무기나 무속 도구에서 영감을 받은 고유한 무기를 사용합니다. 각 인물의 정체성과 세계관의 중심을 이루는 상징물로 작용하며 문화적 깊이와 영적 의미를 더합니다.
루미의 사인검(四寅劍)은 조선 시대 의례용 검에서 착안된 무기로, 동서남북을 수호하는 네 마리 신화 속 호랑이의 보호력을 상징합니다. 이 검은 단청 문양을 포함하고 있어 전통 건축의 시각 언어를 계승하고 있으며, 음파와 문자 형태가 함께 어우러져 루미가 전사이자 공연자라는 이중 정체성을 표현합니다.

미라의 곡도(曲刀)는 곡선형 날이 특징적인 장병기로, 고구려 시대 철염추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는 중국식 관도처럼 보이기도 했으나, 설정상 한국 고유의 무기를 전면에 내세운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집니다. 이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한국 무기를 전 세계 관객에게 소개하는 상징적 장치로 기능합니다.
조이의 신칼(神칼)은 강력한 영적 힘을 지닌 무기로, 무당이 굿 의식에서 사용하는 실제 샤먼 도구에서 착안되었습니다. 영화에서는 소환 가능한 단검으로 등장하며, 이를 던져 악귀를 제압하고 손짓으로 다시 불러들이는 방식으로 싸움을 펼칩니다. 특히 이 무기의 손잡이에는 노리개가 장식되어 있어 부적처럼 영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동시에 디자인적으로도 한국적 아름다움을 더합니다. 담당 디자이너가 절대 일본의 수리검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당부한 것 역시 인상적입니다.

사자보이즈, 도깨비와 저승사자
사자보이즈의 가장 기본적인 디자인 요소는 그들의 이름에서 시작됩니다. ‘사자(使者)’는 한국어로 ‘전령’ 또는 ‘심부름꾼’을 뜻하며, 특히 민속 신앙에서는 죽은 자의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존재인 ‘저승사자’를 의미합니다. 영화는 이 이중적인 의미를 영리하게 활용하여, 사자보이즈가 겉으로는 매력적인 케이팝 아이돌 그룹이지만, 실제로는 팬들의 ‘혼’을 훔치는 악귀라는 설정을 부여합니다. 이는 전통적인 저승사자의 역할인 ‘영혼 인도’를 비틀어 ‘영혼 약탈’이라는 섬뜩한 개념으로 현대화한 것입니다.
사자보이즈는 그들의 의상과 무대 디자인을 통해 저승사자와 아이돌이라는 이중적인 정체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냈습니다. 이들은 상큼한 소년 컨셉으로 청량하고 상큼한 의상을 입고 데뷔했다가, 어둡고 위험한 저승사자 컨셉으로 갓과 검은 두루마기 등 전통 한복 요소를 재해석한 무대 의상을 입어 강렬한 인상을 남깁니다.

사연 있는 악령
사자보이즈는 전통 설화 속 도깨비나 악령이 현대적으로 변주된 캐릭터들입니다. 한국의 도깨비는 인간에게 해를 끼치기도 하지만 때로는 장난스럽고 재물이나 복을 가져다주기도 하는 복합적인 존재로 묘사됩니다. 사자보이즈는 이러한 도깨비의 ‘인간을 현혹하는 매력’과 ‘초자연적인 힘’을 가져와 K-POP 아이돌의 특성과 결합시켰습니다. 그들은 한류 아이돌의 매력으로 팬들을 홀리고, 그들의 혼을 훔쳐가는 괴수로 묘사됩니다. 이는 전통적인 요괴가 현대 도시의 어둠 속에 숨어들어 ‘아이돌’이라는 가면을 쓰고 활동한다는 상상력을 보여줍니다.

또한, 작품 속에는 사자보이즈 외에도 구미호, 귀면귀(鬼面鬼), 액귀 등 한국 퇴마 설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존재들이 서울과 부산의 뒷골목이나 폐건물 속에 숨어든 악령으로 나타납니다. 이는 한국적인 요괴들이 현대 도시의 배경과 융합될 때 어떤 시각적, 서사적 재미를 줄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전통 요괴들의 특징적인 외형이나 능력이 현대적인 모습으로 재해석되어, 익숙하면서도 신선한 공포감을 선사합니다.
죽음을 상징하는 사자
저승사자는 한국 전통문화에서 죽은 자의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사자(使者, 심부름꾼)’로 널리 알려진 존재입니다. 오늘날에는 《전설의 고향》(KBS, 1970~2000년대)에 만들어진 검은 갓과 흰 얼굴 분장을 한 저승사자의 이미지가 강하게 각인되었습니다.

전통적으로 저승사자는 사악한 존재가 아니라 영혼을 수습하고 길을 안내하는 정령적 존재였습니다. 한국의 무속과 민속 신앙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길을 잃지 않고 저승으로 잘 가야 한다고 믿었고, 길을 안내하는 사자의 역할이 중요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사자는 죽은 자를 잡으러 오는 존재로 두려움과 신성함을 동시에 가졌습니다. 무당의 굿에서 등장하는 사자춤은 이런 저승사자의 이미지를 시각화한 의례 중 하나입니다.

사자보이즈는 저승사자보다는 혼을 훔치는 악령에 가까우며 무대에서 저승사자를 연기했습니다. 사자보이즈가 팬들의 혼을 훔칠 때 사용되는 방식이나 그들의 능력이 발현되는 연출에서도 전통적인 주술이나 의식에서 영감을 받은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특정 소리나 동작이 혼을 뺏는 주술적 행위처럼 보이며, 혼이 빨려 들어가는 시각 효과는 전통적인 ‘혼’의 개념을 형상화했습니다.
더피와 서씨, 까치와 호랑이
작중 귀여움을 담당하는 까치와 호랑이는 한국 전통 민화 <작호도>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본래 까치가 길상(吉祥)을, 호랑이가 위엄과 풍자를 동시에 담아내는 상징적 짝으로, 중국 회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창적 상징입니다.


까치는 좋은 소식을 전하는 민중의 대변자로, 호랑이는 탐관오리 같은 권력층을 조롱하거나 산신령의 심부름꾼으로서 사악함을 물리치는 존재로 해석됩니다. 그래서 작호도의 호랑이는 으르렁대기보다는 사팔뜨기 눈과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그려져 권위에 대한 해학을 극대화하고, 까치는 그런 호랑이를 응시하며 통치 권력을 희화화합니다.

이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캐릭터가 바로 파란 호랑이 ‘더피’와 세 개의 눈을 가진 까치 ‘서씨’입니다. 더피는 주인공 진우가 늘 데리고 다니는 ‘착한 요괴’이자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는 중립적 메신저로, 악령과 대비되는 파란 계열의 털색을 지녔습니다. 이름은 작품 안에 직접 등장하지 않지만, ‘더피(Derpy)’라는 별칭은 사우스파크의 Mr. Derp가 사시 눈을 뜬 모습에서 따온 것이며, 작호도 호랑이 특유의 사팔뜨기 눈을 그대로 반영합니다. 캐릭터의 인기가 높아져 굿즈까지 출시될 정도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서씨는 더피와 함께 다니는 까치로, 세 개의 눈—일명 ‘Sus eye’—을 통해 언제나 의심 가득한 시선을 보내며 더피를 한심하게 바라보는 역할을 맡습니다. 그는 진우가 더피에게 선물한 갓을 슬쩍 빼앗아 쓰고 다니는데, 이 갓과 세 눈이 어우러져 ‘갤럭시 까치’라는 별명까지 얻었습니다.

한국적 애니메이션 특이점
케이팝 데몬 헌터즈는 한국 콘텐츠의 가능성이 폭발한 특이점이라 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지금까지의 한국 콘텐츠는 보통 맥락에 맞지 않은 요소를 억지로 끼워 넣는 경우가 많았으며, 이는 마치 모든 음식을 김치화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하지만 케이팝 데몬 헌터즈는 이러한 관행에서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한국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전통적 모티프를 철저하고 집요하게 조사하여, 전체 이야기의 맥락 속에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게 녹여냈습니다. 그 결과 한국에서만 가능한 이야기를 한국적인 방식으로 풀어내며 깊은 울림을 전했습니다.
이러한 깊이는 단순히 외형을 차용한다고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겉모습만 덧씌운 연출은 재미도 감동도 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에 등장하는 다양한 한국적 요소는 각각의 근본적인 상징과 작중 의미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몰입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서울의 네온사인 거리나 월드컵경기장 같은 현대적 공간 속에 경복궁의 지붕선, 일월오봉도 병풍, 당산나무와 같은 전통 요소들이 등장하는 장면은 과거와 현재의 한국 문화를 절묘하게 연결합니다. 극 중 아이돌 무대에서는 응원봉과 플래카드가 실제 공연처럼 묘사되며, 곳곳에 한국 전통 문양과 그룹 로고가 정교하게 담겨 현실감과 전통미를 동시에 표현합니다.
라멘이 아닌 라면, 분식을 폭풍 흡입하는 장면, 소파에 늘어져 쉬는 모습 등은 오직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일상적 풍경으로, 이러한 디테일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한국의 감성을 전달합니다. 이는 한국과 케이팝에 대한 진정한 애정이 없다면 절대 구현할 수 없는 디테일로 작품을 더 매력적으로 만듭니다.
케이팝 데몬 헌터즈는 해외에서 유행하는 서사 구조에 한국적인 요소를 억지로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한국이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를 본질로 삼았습니다. 이 작품은 대한민국 K-콘텐츠가 이제 본격적으로 세계무대에서 독창적인 목소리를 낼 준비가 되었음을 알리는 효시입니다. 케이팝 데몬 헌터즈를 필두로 앞으로 쏟아질 깊이 있는 한국적 작품들이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