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문법이 되고 있는 전기차 브랜드 디자인

내연기관 중심의 자동차 산업은 지금, 거대한 전환점 위에 서 있습니다. 테슬라가 전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두면서 전기차 시대의 상징이 되었고, 기존의 완성차 기업들 역시 전기차 전환을 본격적으로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완전히 새로운 브랜드가 등장하기도 하고, 기존 기업들이 별도의 전기차 전용 서브 브랜드를 만들어 새로운 정체성을 구축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의 브랜드 디자인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단순히 모델명 뒤에 ‘e’나 ‘EV’를 붙이는 것만으로는 전기차의 시대적 의미를 담아내기 어렵습니다. 전기차 브랜드들은 내연기관 시대와 비교해 새로운 감각, 새로운 철학, 새로운 상징 언어를 구축하려 노력해왔습니다. 그리고 그 디자인은 각 브랜드가 전기차를 어떻게 정의하고, 어떤 경험을 제공하려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힌트를 제공합니다.

이번 아티클에서는 주요 전기차 브랜드들이 자신만의 시각 정체성을 어떻게 구축했는지, 그리고 서로 어떻게 차별화했는지 살펴봅니다.

미국

테슬라

‘테슬라’라는 이름은 19세기 전기공학자 니콜라 테슬라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는 교류 전기 시스템의 발전에 기여하며 현대 전력 기술의 토대를 마련한 발명가로, 전기 혁신의 상징적인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회사는 그의 이름을 통해 ‘전기 기술의 혁신을 이끄는 브랜드’라는 정체성을 강조하며, 기술적 진보와 인류 발전에 대한 비전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테슬라의 로고는 간결하면서도 상징적인 형태로, 알파벳 ‘T’를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이 로고는 단순히 회사 이름의 머리글자를 형상화한 것이 아니라, 전기 모터의 단면 구조를 시각화한 디자인입니다. 수직선은 로터를, 곡선형의 윗부분은 스테이터를 상징하며, 이는 테슬라의 뿌리가 전기 에너지 기술에 있음을 시각적으로 표현합니다. 동시에 기술적 정밀함과 공학적 아름다움을 함께 담고 있습니다.

루시드

루시드(Lucid)는 2007년 미국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서 설립된 고급 전기차 제조 기업입니다. 이름 ‘Lucid’는 ‘맑고 명료한, 투명한’을 뜻하는 영어 단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는 브랜드가 지향하는 가치—즉, 복잡함을 최소화한 기술적 순수함과 투명한 비전을 상징합니다.

로고는 미니멀한 산세리프 형태의 워드마크로 구성되어 있으며, 부드럽게 흐르는 곡선과 균형 잡힌 자간이 특징입니다. 로고의 심플한 구조는 ‘명료함과 정제된 기술미’를 표현하며, 브랜드의 이름처럼 투명하고 미래지향적인 인상을 줍니다.

리비안

리비안은 2009년 미국 플로리다주 록리지(Rockledge)에서 설립된 전기차 및 첨단 모빌리티 기업입니다.

이름은 플로리다주 인디언강(Indian River) 인근에서 자란 창업자 R. J. Scaringe의 배경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며, 자연과 환경, 모험성을 담고 있다는 해석이 존재합니다. 브랜드 이름 자체가 “강과 모험”을 연상케 하여 전기차+아웃도어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이미지와 연결됩니다.

리비안의 로고는 사각형 안에 화살표 형태의 기하학적인 심볼을 배치한 ‘나침반 이미지를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 심볼은 “항상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브랜드의 약속을 시각화한 것이라는 설명이 존재합니다.

유럽

벤츠

메르세데스-벤츠의 전기차 라인업 EQ는 Electric Intelligence에서 유래했습니다. EQ는 기존 벤츠의 럭셔리 감각에 전동화·연결성·지능형 운용 같은 미래지향적 이미지를 덧씌우는 역할을 했습니다.

EQ 로고는 얇고 유려한 선형 워드마크가 핵심입니다. 전체적으로 곡선 비중이 높고 수평으로 확장된 형태이며, 문자 간 간격이 넓어 ‘공기처럼 가벼운 기술’을 암시합니다.

Q의 원형 내부에 끊김을 둔 구조는 전기 회로의 노드(결합점)를 추상화한 것으로, ‘연결되는 전자 흐름’을 상징하는 그래픽 모티프로 반복 활용됩니다.

차량 외관에서는 청색 또는 은색 메탈릭으로 표현되며, 광택을 최소화한 평면화 처리로 미래적 느낌을 강화합니다.

BMW

BMW의 전기차 라인업 i 시리즈는 ‘intelligence’를 의미하며 i3, i4, i7 등으로 이어지는 모델명을 사용합니다.

i 로고는 매우 좁고 세로로 길게 늘어난 산세리프 워드마크로, 단순한 형태 속에서도 각 획의 모서리를 부드럽게 다듬은 ‘유기적인 하드 엣지’가 특징입니다. 살짝 기울어진 각도는 속도감과 역동성을 강조하며, 전기차에서도 BMW 특유의 다이내믹한 에너지를 표현합니다.

또한 BMW i는 기존의 ‘BMW 블루’보다 더 밝고 투명한 아이스 블루를 시그니처 컬러로 사용합니다. 이는 차갑고 가벼운 에너지, 그리고 친환경적인 감성을 직관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색 선택입니다.

아우디

Audi e-tron이라는 이름은 아우디의 첫 전기차 모델이자 전기 구동 기술 전체를 상징하는 네이밍입니다. “e-tron”은 electric(전기)과 -tron이라는 접미사의 결합으로, 여기서 “-tron”은 전자나 전하를 띠는 입자, 혹은 전기적 기술 요소를 나타낼 때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즉, e-tron은 아우디가 추구하는 순수 전기 구동 시스템의 정체성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핵심 명칭입니다.

로고는 소문자 기반의 워드마크 형태로 구성되며, 전체적으로 네모난 비례 속에 곡률이 큰 라운드 코너를 적용했습니다. 이러한 형태는 미래적인 감각과 함께 부드러운 주행감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폭스바겐

폭스바겐이 전기차 브랜드 전략의 중심에 둔 ID 시리즈는 순수 전기차만을 위한 전용 라인업입니다. 이때 “ID.”라는 명칭은 Volkswagen이 밝힌 바에 따르면 ‘intelligent design, identity, visionary technologies’를 의미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뒤에 점(.)이 붙는 표기 방식입니다. 이는 ‘ID’ 자체가 짧은 단어이기 때문에 뒤에 오는 숫자(예: 3, 4, 7)와 하나의 단어처럼 붙어서 보이지 않도록 시각적 구분을 명확히 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동시에 디지털적이고 미래적인 감각을 강조하며, 전동화 시대의 새로운 아이콘이라는 인상을 부드럽지만 확실하게 전달합니다.

폴스타

스웨덴의 전기차 브랜드 폴스타의 이름은 북극성(Polaris)에서 유래했으며, 북쪽을 가리키는 별처럼 방향성을 제시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로고는 기하학적인 별 모양 심볼을 특징으로 하며 “가이딩 스타”라는 이름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비주얼 아이덴티티 측면에서는 산세리프 타입페이스를 사용하고, 색상·구성 요소가 미니멀하고 정제된 형태로 브랜드의 정체성을 시각화하고 있습니다.

아시아

현대 IONIQ

현대자동차는 전기차로 구성된 IONIQ 브랜드를 운영합니다. 브랜드명 IONIQ(아이오닉)는 “ion + unique”라는 합성어로, 전기(ion)라는 기술적 특성과 독특함(unique)을 결합해 ‘전기차 혁신’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모델은 크기에 따라 5, 6, 7로 구성됩니다.

아이오닉은 차량 조명에 쓰인 픽셀 그래픽이 주요 시각 정체성입니다. 워드마크의 Q는 겹치는 부분을 비워 픽셀 모티프를 표현했습니다. 별도의 심볼은 없으며 기하학적인 형태의 워드마크만 사용합니다.

기아 EV

기아는 2021년부터 브랜드 전략 ‘Movement That Inspires’를 내세우며 로고를 기존의 타원형 엠블럼에서 단선 형태로 바꿨습니다. 하나의 연속된 선으로 브랜드명 ‘KIA’를 연결함으로써 일체감과 연속성을 강조했다는 해석도 존재합니다. 그래픽 모티프로 차량의 헤드라이트와 같은 요소에도 같은 문법이 적용 됐습니다.

기아의 전기차 브랜드 EV는 Electric Vehicle의 약자를 사용하며, 모델의 등급에 따라 숫자가 뒤에 붙습니다. 로고에는 기아 로고와 같은 그래픽 규칙이 적용됐습니다. 수직과 사선으로 획이 뻗어나가며 각 알파벳은 하나의 획처럼 연결되며, 굵은 선과 얇은 연결 부분이 시각적인 리듬감을 형성합니다.

브랜드 전체에 철저하게 반영된 단선 흐름은 기아를 대표하는 강력한 시각 정체성이 되었습니다.

비야디

중국의 전기차 브랜드 BYD의 이름은 공식적으로 “Build Your Dreams”의 약어로 알려져 있지만, 창업자 왕촨푸(Wang Chuanfu)는 인터뷰에서 초창기에는 “Bring Your Dollars”라는 의미로 사용했다고 밝히며 화제를 모은 바 있습니다.

로고 디자인은 2003~2007년에는 BMW와 비슷한 형태를 사용했고, 2007~2021년 사이에는 기아 로고와 닮은 디자인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이후 2022년에는 얇고 수평적으로 뻗은 워드마크 형태로 변경되었는데, 이는 테슬라의 로고 문법과 유사한 인상을 줍니다. 이전 로고에서 ‘Y’에 있던 단절 요소를 계승하고, ‘B’와 ‘D’의 세로 획을 생략해 매끄럽고 유려한 곡선을 강조한 것이 특징입니다. 다만 이로 인해 ‘B’가 숫자 ‘3’처럼, ‘D’가 수학의 집합 기호처럼 보일 수 있어 가독성 면에서는 호불호가 갈리기도 합니다. 전체적으로는 곡률이 높은 곡선과 꽉 찬 형태가 결합되어 전자 회로 같은 기술적 이미지를 전달합니다.

혼다 제로

일본의 자동차 브랜드 혼다는 전기차 라인업 ‘Honda 0 시리즈(Zero Series)’을 만들었습니다. ‘0(제로)’라는 이름은 단순한 숫자라기보다, 혼다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근본부터 새롭게 설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내연기관 시대에 쌓아온 관성을 지우고, ‘제로 포인트’에서 다시 시작해 미래 모빌리티를 정의하겠다는 메시지입니다. 환경 영향 제로(Zero Emission), 교통사고 사망자 제로(Vision Zero) 등 혼다가 오랫동안 추구해온 사회적 목표와도 직결됩니다.

도요타 BZ

도요타의 전기차 전용 라인업 bZ 시리즈의 이름은 “Beyond Zero”의 약어입니다. 단순히 탄소 배출을 ‘제로(0)’로 만드는 것을 넘어서, 전기차 시대에 맞는 새로운 이동 경험과 지속 가능한 가치, 나아가 사회적·환경적 전환을 목표로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하이브리드의 선구자인 도요타가 전기차 시대에서도 기술적·철학적 방향성을 다시 제시하겠다는 선언에 가깝습니다. 모델명에 붙는 숫자는 차급을, 알파벳은 차체 형태를 나타내는 방식(bZ4X = 중형 SUV)을 사용했으나, 최근에는 네이밍을 더 간결하게 조정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습니다.

로고 디자인은 기존 도요타의 타원형 엠블럼과는 별도로, bZ 워드마크 중심으로 정체성이 구축되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수평적으로 납작하고, 얇고 간결한 획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직선과 곡선을 최소 단위로 정리한 기하학적 형태가 특징입니다. 이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e-TNGA)을 사용한 새로운 설계 철학과 연결되며, 내연기관 시대의 메커니즘과는 다른 디지털 기반 이동성을 상징합니다. 워드마크는 심볼보다 디지털 화면에서의 가독성과 확장성을 우선시한 형태로, 기술적이고 미래적인 인상을 부드러운 흐름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결론

전반적으로 전기차 브랜드들은 비슷한 시각적 문법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워드마크는 대체로 납작하고 가로로 긴 형태를 띠는데, 이는 자동차의 낮고 길게 뻗은 차체 비율과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전기차만을 전문으로 만드는 브랜드들은 심볼 중심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반면, 기존 내연기관 브랜드들은 기존의 엠블럼을 유지하면서 전기차 라인업은 간결한 워드마크 중심으로 정리하는 경향이 뚜렷합니다.

형태는 전체적으로 기하학적이고 단순화되어 있으며, 기계적이고 미래적인 인상을 남깁니다. 얇거나 생략된 획을 사용해 가벼움과 효율성을 표현하고, 획의 꺾이는 부분을 부드럽게 처리해 연결과 흐름을 강조합니다. 이는 마치 하나의 전류가 흐르듯 끊김 없는 움직임을 상징합니다. 전기적 속성은 형태보다는 주로 색과 발광 효과를 통해 암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과적으로 현재 전기차 브랜드 디자인은 테슬라를 필두로, 전기차라는 새로운 기술 영역은 고유한 시각 언어를 형성하기 시작했습니다. 디지털, 소프트웨어, 전기 에너지라는 키워드는 자연스럽게 사이버 펑크적인 미래감과 맞닿아 있습니다. 이 디자인 문법은 아직 완전히 문화 속에 정착되지 않았지만, 전기차 시장의 성장과 함께 점차 반복되고 확산될 것입니다.

전기차 디자인은 이제 막 그 서사를 쓰기 시작한 단계입니다. 앞으로 이 흐름이 어떤 시대의 미적 상징으로 자리 잡을지, 그리고 어떤 새로운 변주를 만들어낼지 기대됩니다.

박종민
프리랜서에서 유니콘급 스타트업 헤드 오브 디자인까지. 18년 넘게 브랜드와 프로덕트를 디자인하며 임팩트를 만들어 왔습니다. 현재는 디자인 나침반 CEO이자 편집장으로서 비즈니스 임팩트를 내는 디자인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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