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Day or Day 1: 독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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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했습니다. 나만의 길을 가려 합니다.

나는 영원히 타는 태양을 가졌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믿었습니다. 하지만 불꽃 튀게 튕기던 기타에 금이 갔습니다.

하루 종일 거대한 바위를 머리에 이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느리게 걸을 수는 있었지만 더 이상 달릴 수 없었습니다. 이제는 나를 한계까지 몰아붙여 눈 앞의 장애물을 부수며 나아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씩 닳아 언젠가 완전히 사라질 나를 생각하니 남은 시간이 더 소중해졌습니다. 모래시계에 황금 모래가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내 마음을 열어봤습니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느꼈고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을까?’

스타트업 디자인

스타트업에서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가장 리스크가 높은 것만 선택했을까 싶네요. 우연한 기회가 생길 때마다 놓치지 않고 성장하려 노력했습니다. 새로운 도전만이 뛰어난 성취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디자인과 연관된 거의 대부분 문제를 풀어본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내 일’이라는 모토로 처음 일을 시작했었는데 이제는 ‘고객과 맞닿는 모든 경험이 내 일’로 바뀐 것 같네요. 솔직히 가끔은 너무 넓다는 생각도 듭니다.

솔로

디자인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의 취향과 기분에 맞추지 않고 디자인의 역할을 완수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대단한 학문적 지식이나 경험은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느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걸 쓰는 사람이 중요하다.’라고 생각하면서 자연스럽게 고객 중심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는 아마 자유롭게 디자인할 수 있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누가 시키는 것만 했다면 고객을 생각할 필요가 없었겠죠.

한정된 상황에 주어진 리소스로 임팩트를 내는 법도 배웠습니다.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느긋하게 시간을 쓸 수 없다보니 더욱 확실하고 명쾌한 디자인의 효과를 알아야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애매모호하고 시간이 드는 일이 있다면 단호하게 정리하고 잘라냈습니다. 대화 10분도 아껴야 했기 때문이죠. 인상적인 임팩트를 위해 바이올린을 들고 솔로잉을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듀엣

동료와 협업해 함께 목적을 이루는 법을 배웠습니다.

큰 임팩트를 내고 싶은 욕심 많은 인재가 가득해서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동료만큼 높은 수준이 돼야 했고 소통도 잘해야 했습니다. 일은 잘 하는데 말을 못 하면 더 큰 임팩트를 낼 수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함께 성공하려면 반드시 내 의도를 뚜렷하게 정돈하고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파악해야 했습니다. 원만한 협상을 위해 미팅 전날 밤새도록 논리를 글로 정리하고 읽고 또 읽었습니다. 상대를 이기기 위한 준비가 아니라 정말 내가 주장하는 것이 우리 모두를 위한 방법인지 묻고 또 물었죠.

디자이너가 아닌 분들과도 정말 많이 소통했습니다. 함께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들과 같은 목표를 바라볼 수 있게 다양한 시도를 했죠. 피아노가 자신의 선율에 집중할 수 있게 바이올린이 받쳐줘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오케스트라

디자인 리더를 맡아 다른 사람과 조직을 성장시키는 법을 배웠습니다.

내 역량이 커질수록 믿을 것은 내 능력뿐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냥 잘하는 것 이상으로 동료와 함께 힘을 합쳐야만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원하는 답을 빨리 구현해 주는 도구가 아니라 함께 꿈꾸고 멋진 도전을 이어갈 팀이 되어야 했습니다.

디자인만 잘해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는 수많은 상황에 울고 웃었습니다. 포기하면 편했겠지만 꿈을 이루려면 성장해야 된다 생각했습니다. 새로운 도전이 있을 때마다 전날에 잠 못 자면서 두근거렸습니다. 상대방 눈도 쳐다보지 못했던 사람에서 이제는 발표도 하고 회의 모더레이터도 하는 것이 감개무량하네요. 제법 규모가 있는 회사에서 2개의 팀을 성장시키면서 꿈꾸던 디자인 커뮤니티를 만들었다고 자부합니다. 리더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지 않고 각자 자신만의 강점으로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도전하고 기뻐하는 모습이 뿌듯했습니다.

준비된 악보대로 연주할 수 없던 것이 마치 재즈 오케스트라 같았습니다. 회의를 시작했는데 진행 방향을 아예 바꾸기도 했습니다. 지금 당장 우리가 얻을 것이 무엇인지에 맞춰서 이리저리 적응했었죠.

연주가 끝난 뒤

스타트업은 말 그대로 시작하고 올라가야 합니다. 빠른 성장이 미덕이기에 고객을 확실하게 움직이는 디자인에 집중합니다. 어떻게 하면 더 빨리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나를 입증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성공할까. 탁월한 성취를 위해 스스로를 몰아붙입니다.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집착하며 기어코 답을 찾아내는 사람들. 몸과 마음이 상처 입어도 앞으로 나아가 깃발을 꽂는 사람들. 내 솔로보다 다른 사람의 솔로를 지켜보는 것이 기분 좋았던 것 같습니다.

희미해지는 경계

경험 설계자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혼자서 좋은 고객 경험을 만들 수 없습니다.

동료 모두가 한마음으로 최고를 추구해야만 멋진 경험을 만들 수 있죠. 과거에는 나의 전문 기술을 잘 발휘하면 됐습니다. 기술을 잘 아는 디렉터의 지시를 따르기만 해도 원하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변화의 속도는 너무나 빠르고 배우고 실행하는 속도도 빨라졌습니다. 누군가의 허가나 지시를 기다릴 시간이 없습니다. 공동의 목표를 이해하고 내가 가진 것으로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자문하고 실행합니다.

이제 디자이너는 디자인만 하지 않습니다.

이는 디자인뿐만 아니라 다른 영역도 마찬가지죠. 회사는 사업으로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서비스를 만드는 구성원은 지속적으로 가치 있는 고객 경험을 제공해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 목표죠. 그중 디자이너는 내가 만든 디자인을 사용하는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서비스는 보고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각적인 결과물 구현만으로는 완전히 만족시킬 수 없죠. 고객에게 더 나은 가치를 제공하면서 조직의 이익이 커질 수 있는 서비스 경험을 끊임없이 탐색합니다. 보고 사용하는 경험만 집중하는 것을 넘어 사업, 개발, 경영을 이해해야만 임팩트를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전문성은 완전히 사라진 걸까요?

아니 그럴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같은 관심을 갖고 같은 역량을 가질 수 없습니다. 자신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라면 깊게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민이 깊을수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자하는 시간과 노력도 상당할 것입니다. 전문성은 여기서 탄생한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인은 감각의 영향을 많이 받아 누구나 쉽게 자신의 감각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이 속에서 디자이너는 오직 자신만이 기여할 수 있는 가치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다른 영역을 깊게 이해하고 디자인만이 제공할 수 있는 것과 제공할 수 없는 것을 파악해야 할 것입니다.

얻기 어려운 고유함

나음에서 다름이 되기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브랜드와 서비스가 비슷해지고 있습니다.

주로 많이 쓰이는 하드웨어인 스마트폰와 소프트웨어인 모바일 OS는 빠르게 성장했고 이제는 대부분의 영역이 규격화 되었습니다. 사용자에게 편한 방식을 추구하면서 서로 다른 업체들의 기기, OS가 비슷해졌습니다. 비슷한 맥락으로 앱과 웹으로 제공하는 서비스들도 점점 비슷해지고 있습니다. 적은 리스크로 성공하기 위해 앞선 사례를 따라 하는 전략을 취하는 회사가 많죠. 디지털 프로덕트의 GUI나 브랜드를 표현하는 방식이 비슷해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서비스가 제공하는 핵심 가치조차 겹치기 시작했습니다.

평범함 속에 비범함을 찾아야 합니다.

배우기도 쉽고 만들기도 쉬워지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힘들게 만들던 것들이 이제는 평범해질 것입니다. 열심히 배웠던 기술이 사라질 때 허무할 때가 많았습니다. 세상이 변할 때마다 지금까지 내가 했던 잊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했습니다. 본질을 다시 정의하고 다른 방식으로는 제공할 수 없는 디자인만의 가치를 제안해야 했습니다. 이제는 AI의 시대도 다가오고 있습니다. 평범해질 디자인 속에서 어떻게 비범해질 수 있을지 다시 질문하게 됩니다.

‘지금보다 좋은 경험’은 변하지 않을 가치입니다.

완전한 만족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욕망을 충족시키는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는 끝없는 A/B 테스트, 머신 러닝 등을 거쳐 전체의 평균에 가까운 정답의 세상이 될 것입니다. 기획, 제작, 운영이 효율적으로 되면 남는 것은 의도일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 생각해야 하는 것은 ‘무엇이 좋은 경험인가?’에 관한 판단일 것입니다. 내가 노는 데 모은 돈을 다 써버리는 것이 좋은 삶일까요 미래의 가족을 위해 저축하는 삶이 좋은 삶일까요?

내가 생각하는 좋은 경험

좋음에 관한 나의 답이 곧 나의 디자인일 것입니다.

세상에 좋은 경험이 넘칩니다.

봐야 할 경험도 해야 할 경험도 넘칩니다. 좋은 경험을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경험을 알아야겠죠. 무엇이 지금보다 더 좋은지 알려면 위해서는 내가 직접 경험해야 할 것입니다. 아직 소개되지 않은 좋음을 알리고 전파하는 것이 디자이너의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내가 원한다면 언제든 손을 뻗으면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시간, 공간, 돈의 제약은 있지만 시작이 어렵지는 않습니다. 책을 구매해서 타인의 정돈된 생각을 알 수 있고 강의를 구매해 구체적인 이론과 실천법을 배울 수도 있습니다. 모임에 나가 특정 주제에 관해 사람들과 깊게 토론할 수도 있습니다.

내 것으로 소화합니다.

어떨 때는 경험하는 그 자체만을 즐기게 됩니다. 성장해서 세상에 더 나은 것을 만들고 싶다면 그 ‘좋음’을 나의 것으로 만들어야 하죠. 관찰하고 질문하며 영감을 계속 받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영감에서 끝나면 안 될 것입니다.

실리콘 밸리의 멋진 사례, 오피니언 리더와 인플루언서의 말들이 마치 나의 생각인 것처럼 느낀 적도 있습니다. 나의 생각과 말이 다른 사람의 것을 반복하는 것인지 의심했습니다. 세상에 완전한 새로움은 없는데 어떻게 해야 벗어날 수 있는지 끊임없이 고민했습니다. 결론은 맥락을 이해하고 나만의 것으로 변형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경험을 공유합니다.

내 것으로 만드는 최고의 방법은 역시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아직 모르는 것이죠. 먼저 내 맥락부터 이해했습니다. 지금 이 글도 일부죠. 나는 무엇을 겪었고 무엇을 느꼈고 무엇을 원하는지 탐구합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뭐 했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원하는 것도 없습니다. 아주 작은 불씨를 찾을 때마다 신호를 놓치지 않고 낚아챘습니다. 그때마다 나에 대해 하나씩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를 둘러싼 맥락을 이해했습니다. 디자인이라는 주제를 이야기한다고 디자인만 알면 안 됐습니다. 디자인이 왜 필요한지, 디자인이 어떤 효과를 내는지 등 디자인이 쓰이는 회사와 내부에서 협업하는 사업, 개발, 운영 조직에 디자인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이해해야만 내 디자인을 알고 나아갈 방향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다음 나의 연주

나의 꿈을 향해 가는 ‘어느 날’이 아닌 ‘첫날’이 시작됐습니다.
새로운 회사에 합류할 계획은 없으며 가슴 뛰는 일을 해보려 합니다.
나만의 빅밴드를 꾸리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현재 운영하는 디자인 나침반을 중심으로 독립된 디자인 플랫폼을 만들고자 합니다.
디자인으로 세상이 더 풍요로워지는 비전에 집중할 수 있게 독립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지향합니다.
누군가의 희생에 기대지 않고 필요한 가치를 제공하고 합당한 대가를 받으며 함께 성장하려 합니다.

크게 4가지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 매거진 – 좋은 디자인을 많이 자주 만날 수 있게
  • 아카데미 – 좋은 디자인을 탁월하고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게
  • 커뮤니티 – 좋은 디자인을 함께 나누고 키울 수 있게
  • 컨설팅 – 좋은 디자인을 만드는 방향을 빠르게 잡을 수 있게

저는 앞으로 디자인이라는 이 아름다운 언어로 세상이 더 풍요로워질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제게 디자인은 몇 번을 다시 태어나도 선택할 꿈입니다. 형태는 바뀌었지만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디자인이 당신의 자부심인가요?
만약 사용자의 더 나은 경험을 상상하며 도전하고 있다면
당신이 디자이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문제에 깊게 고민한 분들과
시간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많이 이야기 나눠보려 합니다.

contact@designcompass.org

관심 있는 분들의 연락을 기다리겠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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