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스포칼립스가 정말 올까?

00
Hour
00
Minute
00
Second

필요한 것만 만들어 쓰는 시대

예전에는 90%는 쓰지도 않는 기능인데, 반드시 필요한 10% 때문에 SaaS 비용을 내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제는 그 10%만 직접 만들어 쓰는 선택지가 생겼습니다. 복잡한 제품 전체가 필요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입력값과 출력값이 분명하다면 굳이 범용 도구를 쓸 이유가 줄어듭니다. 필요한 것만 만들어 쓰는 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본래 작은 이미지 하나, 간단한 내부 툴 하나, 반복되는 업무 자동화 하나를 만들기 위해 여러 사람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디자이너가 요청서를 쓰고, 개발팀이 우선순위를 정하고, 일정이 밀리면 몇 주가 지나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이런 작업 중 상당수가 몇 분 안에 해결됩니다.

가장 먼저 바뀐 영역은 디펜던시가 낮은 작업입니다. 여기서 디펜던시가 낮다는 것은 작업 과정이 외부 요인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다른 부서의 승인, 복잡한 데이터 연동, 고객 행동에 따른 예외 처리, 법무·보안 검토가 거의 필요 없는 작업입니다. 혼자 규칙을 정하고, 혼자 만들고, 내부에서 바로 쓸 수 있는 일부터 빠르게 대체되고 있습니다.

마케팅용 프로모션 이미지가 대표적입니다. 소셜 미디어 이미지, 이벤트 배너, 광고 소재, 뉴스 커버처럼 일정한 규칙 안에서 대량 생산해야 하는 이미지는 AI와 자동화에 잘 맞습니다. “상단에는 제품 이미지, 하단에는 제목, 배경은 흰색, 4:5 비율, 브랜드 컬러는 이 범위 안에서만 사용”처럼 코드나 프롬프트로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이면 속도가 크게 빨라집니다. 사람이 매번 새롭게 창의적 판단을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정해진 규칙 안에서 변주를 많이 만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SaaS는 사라지는가?

이 변화가 커질수록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나옵니다. “그럼 SaaS는 다 없어지는 것 아닐까?” “이제 다들 직접 만들어 쓰면 되는 것 아닐까?” 일부 영역에서는 맞는 말입니다. 단순한 기능 하나만 제공하던 SaaS는 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규칙적인 이미지 생성, 간단한 정보 취합, 문서 분류, 가계부 수준의 계산, 특정 포맷으로 데이터를 정리하는 도구는 사용자가 직접 만들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하지만 기능을 만들 수 있는 것과 도메인을 지배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작은 기능 하나가 효율화됐다고 해서 비즈니스 전체에 큰 임팩트가 생기지는 않습니다. 모두가 같은 도구를 쓰고, 모두가 비슷한 속도로 자동화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경쟁력은 “기능을 만들 수 있느냐”보다 “어떤 도메인을 얼마나 깊게 장악했느냐”에서 나옵니다.

예를 들어 Notion은 단순히 문서를 쓰거나 표를 만드는 기능만 보면 대체가 쉬워 보입니다. 하지만 기업용 Notion은 권한 관리, 보안, 관리자 제어, AI 거버넌스 같은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Notion은 엔터프라이즈 제품에서 AI 거버넌스, 보안, 관리자 제어, 데이터 보존·학습 관련 정책을 강조합니다.   사용자는 단순한 메모장을 사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지식이 흐르는 방식을 맡기는 것입니다.

SaaS 기업들은 이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작은 기능 하나를 파는 것이 아니라, 자기 도메인을 지배하기 위한 총체적인 솔루션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Adobe는 이미지 생성 도구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Firefly를 Creative Cloud, Express, GenStudio, 마케팅 콘텐츠 생산 흐름 안에 넣고 있습니다. Canva도 단순한 디자인 툴을 넘어 브랜드 에셋, 템플릿, 협업, 영상, 프레젠테이션, AI 생성 기능을 묶은 작업 환경으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신생 회사에게 기회가 있는가?

기존 강자는 도메인을 지배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그렇다면 신생 회사는 어떻게 될까요? 기존 성공 방정식은 니치한 영역에서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큰 회사가 신경 쓰지 않는 작고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특정 사용자에게 강한 가치를 만든 뒤, 점차 시장을 넓히는 방식입니다.

이 전략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적은 자본으로 새로운 시장에 진입하려면 처음부터 거대한 평균 시장을 노리기 어렵습니다. 가장 독점하기 좋은 작은 영역부터 장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난이도는 올라갔습니다. 니치하고 단순한 것은 이제 사용자가 직접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이런 작은 불편을 해결해주는 툴이 없네”가 창업 아이템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그 정도는 우리가 직접 만들면 되지 않나?”라는 반응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더 많은 가치를 가진 틈새를 찾아야 합니다. 단순히 작은 시장이 아니라 복잡한 사슬이 있는 시장을 봐야 합니다. 사슬이 있는 곳에는 무조건 틈새가 있습니다. 여러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고, 데이터가 흩어져 있고, 승인 절차가 복잡하고, 기존 도구가 현장에 맞지 않는 곳에는 늘 틈새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병원, 물류, 건설, 교육, 법률, 금융, 제조 같은 영역은 단순한 UI 하나로 끝나지 않습니다. 현장 업무, 규제, 문서, 승인, 고객 응대, 데이터 기록, 예외 상황이 함께 움직입니다. 이런 곳에서는 기능 하나를 빠르게 만드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도메인을 이해하고, 실제 업무 흐름 안에 들어가고, 사람들이 매일 쓰는 방식까지 바꿔야 합니다. 신생 회사의 기회는 바로 이런 곳에 있습니다.

기본 전략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틈새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제ㅋ는 더 깊은 틈새를 찾아야 하고, 더 빠르게 확장해야 합니다. 필요한 것만 만들어 쓰는 시대에는 단순 기능이 제품이 되기 어렵습니다. 오래 살아남는 제품은 기능이 아니라 도메인을 장악합니다.

박종민
프리랜서에서 유니콘급 스타트업 헤드 오브 디자인까지. 18년 넘게 브랜드와 프로덕트를 디자인하며 임팩트를 만들어 왔습니다. 현재는 디자인 나침반 CEO이자 편집장으로서 비즈니스 임팩트를 내는 디자인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최근 아티클

Plus
26. 05. 07
Plus
26. 05. 06
Plus
26. 05. 04
Plus
26. 04. 30

디자인 나침반 뉴스레터

Design for Busin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