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차이나 모던 럭셔리

무비자 입국으로 열린 상하이에 다녀 왔습니다. 여행을 계획하기 전까지 상하이에 관해서는 아는게 많지 않았습니다. 명작 영화인 색,계 속의 거리 정도만 상상했습니다.

중국이라는 나라에 큰 관심이 없었고 인터넷으로 수집할 수 있는 정보도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미디어에서 자주 보이는 오색찬란한 LED가 번쩍이는 곳이라고만 여겼습니다.

짧은 비행을 마치고 도착한 상하이는 상상과는 딴판이었습니다. 다른 나라의 대도시에서는 보기 어려운 중국만의 브랜드를 접할 수 있었고, 부를 뽐내는 허영 대신 문화적인 깊이가 느껴지는 세련된 도시였습니다.

스마트 시티

알리페이와 위챗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는 도시였습니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실제로 경험해보니 훨씬 편했습니다. 스마트폰 배터리가 많이 걱정되었는데, 역시 수요가 공급을 만드는 규칙대로 배터리 충전 서비스가 가게마다 있었습니다. 가게에서 일시적으로 충전하는 것이 아니라 플랫폼에서 서비스로 제공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중국의 인터넷은 만리장성이라는 방화벽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운영하는 웹사이트가 숙소 WiFi에서는 접속이 잘 되는데 동네 카페에서는 접속이 안 되어서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 판매하는 유심은 대부분 VPN이 되는 것 같습니다.

중국 앱을 한국에서 미리 활성화하는 것이 어려워서, 막상 현지에서 먹통이 될까봐 걱정 됐습니다. eSIM 설정 때문에 약간 애먹었지만 결국 알리페이, 위챗 모두 연결해서 편하게 사용했습니다.

두 앱의 전략이 미묘하게 다른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슈퍼앱답게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알리페이는 핀터레스트 같은 레이아웃의 콘텐츠를 전면에 내세웠고 위챗은 카카오톡을 같은 채팅 목록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알리페이는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정보를 발견하기 좋았고 위챗은 업체와 직접 소통하는 것이 편했습니다. 두 앱 모두 별도 앱이 제공하지 않는 번역 기능에 메뉴 레이아웃이 통일 되어 있어서 관광객 입장에서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한국에서도 페이나 예약 시스템이 몇개의 서비스로 통일될 법도 한데 지금도 수없이 많은 업체가 경쟁하는 것이 대조적입니다. 스마트폰 기반 QR 코드로 바로 넘어가지 못하고 터치 스크린 기반 테이블 키오스크로 경쟁하는 것이 갈라파고스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역시 하나로 통일되는 것이 편리한 것 같습니다.

높고 크고 넓고

상하이는 작은 항구였는데 서구 열강이 중국에 진출하면서 국제적인 도시로 성장했습니다. 이 때 서구 열강은 조계지라는 것을 만들었는데, 이는 중국 정부의 직접적인 통제 없이 경제적·정치적 이익을 얻기 위해 설정한 지역이었습니다. 조계지에서는 외국 법과 행정 체계가 적용되었고 중국인들은 제한된 권리를 가진 채 거주하며 노동자로 활용되었습니다. 서구식 치안 시스템을 도입해 자체 경찰력과 행정 조직을 갖췄습니다.

서구식 건축물과 기반 시설이 들어섰고, 은행·무역 회사·병원·학교 등이 설립되면서 상하이는 동아시아의 금융·경제 중심지로 성장했습니다. 영국과 미국이 주도한 공동 조계지는 국제적 무역과 금융의 중심지로 번성했으며 프랑스 조계지는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습니다. 1941년 태평양 전쟁 발발 후 일본군이 조계지를 완전히 장악하며 서구 열강 통치가 멈췄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서구 열강은 중국에 조계지를 반환했습니다.

그래서 상해에는 중국 전통 건물보다는 현대적인 건물이 많았습니다. 역사적인 의미 있는 건물도 대부분 조계지와 연관이 있는 건물이 많았습니다. 상하이를 대표하는 전통 공간이 예원도 막상 방문해 보니 거대 야외 쇼핑몰이었습니다. 유명한 공간은 대부분 부동산 디벨로퍼의 기획이 느껴졌는데 의외로 각자의 개성을 강하게 드러내서 보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성장하면서 엄청난 크기의 빌딩이 많이 지어졌는데 그 중 상하이를 대표하는 건축물인 동방명주도 미디어에서 접했을 때는 촌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화려하고 멋진 미래 도시 느낌이었습니다. 와이탄 거리는 조명이 너무 강해서 생각보다는 작위적인 느낌이 들었는데, 오히려 한 블럭 안에 있는 락 번드가 지금 상하이의 현재를 보여주는 멋진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곳곳에 보이는 녹지 공간이나 공원은 수종이 다양하고 규모가 큽니다. 단순히 식물을 모아 놓은 것이 아니라 걷는 사람의 동선과 시선을 고려한 설계가 아름다웠습니다. 특히 예원 바로 옆에 있는 공원 내부의 넓은 풀밭이 기분이 좋았습니다.

모던 차이나 미감

중국하면 역시 한자가 떠오릅니다. 한자 붓글씨에서 비롯된 시각적 표현이 강하고, 처음에는 장식이 많을 것이라 오해했지만 실제로는 태국이 훨씬 화려한 편이었습니다. 중국 디자인은 오히려 선이 끊기지 않고 부드럽게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건물이나 가구에서도 끊김 없이 흐르는 형태가 자주 보이고, 둥근 곡선을 따라 이어지는 선의 아름다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현대 디자인에서는 단연 라부부가 눈에 띄었습니다. 한국이나 일본과는 또 다른, 화려하면서도 섬세한 귀여움이 잘 표현되어 있었고, 커다란 눈망울과 적절한 묘사 덕분에 작품처럼 느껴졌습니다. 라부부 외에도 비슷한 스타일의 캐릭터 브랜드 숍들이 여럿 있었고, 아직은 일본 캐릭터의 느낌이 조금 남아 있지만 중국만의 캐릭터 디자인이 빠르게 완성되어 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피규어 제조 품질도 이미 상당한 수준이라 앞으로 오리지널 디자인이 더 많이 등장할 것 같았습니다.

전통적인 느낌을 유지한 브랜드 디자인도 매력적이었습니다. 중국 차라고 하면 예전에는 보이차만 떠올렸는데, 다양한 종류의 차를 경험할 수 있었고 이를 아름답게 표현한 브랜드 디자인도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특히 아마수작의 브랜드 디자인은 일본적 요소에 기대지 않으면서도 중국 특유의 거친 질감과 고급스러운 마감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음료 자체도 놀라울 만큼 맛있어 전체적인 경험이 좋았습니다.

몇 년 뒤가 기대되는 도시

상하이는 최첨단을 달리는 편하고 즐거운 도시입니다. 역동적인 변화의 한가운데에서 점차 자신만의 미감과 정체성을 갖춰가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도시 전체가 끊임없이 진화하면서도 어느 순간부터는 상하이다운 미적 언어를 찾아가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앞으로 이 도시가 어떤 모습으로 변화해 갈지 더욱 기대됩니다. 다음 방문에서는 지금보다 더 많은 새로운 브랜드와 실험적인 시도들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박종민
프리랜서에서 유니콘급 스타트업 헤드 오브 디자인까지. 18년 넘게 브랜드와 프로덕트를 디자인하며 임팩트를 만들어 왔습니다. 현재는 디자인 나침반 CEO이자 편집장으로서 비즈니스 임팩트를 내는 디자인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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