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낮과 밤의 서로 다른 열망

좋은 기회가 생겨 양양에 워케이션을 다녀왔습니다. 몸을 움직이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서 직접 서핑을 즐기진 않았지만, 특유의 문화가 만들어내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양양이 서핑의 성지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떤 곳인지 자세히 알지 못했습니다. 동해안에서 나고 자라 해수욕장이 익숙했는데 한국이 맞나 싶을 정도로 생소한 풍경이었습니다. 특히 낮과 밤은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인구 해변
인구 해변
인구 해변

뜨거운 태양을 닮은 낮

양양의 낮은 마치 발리 같았습니다.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힘든 과감한 스타일의 패션이 가득했습니다. 구릿빛 피부의 근육질 남녀가 시원한 옷을 입고 맨발로 길을 걷습니다.

수영복을 입은 사람은 당연히 많았고 다양한 형태의 문신을 새긴 사람도 많았습니다. 누군가는 보일 듯 말 듯 발목에 문신을 새겼고 누군가는 전신을 문신으로 까맣게 채웠습니다. 자기 입맛대로 꾸민 서핑 보드, 까맣게 탄 피부, 세밀하게 새긴 문신이 어우러져 자유로움과 개성이 느껴졌습니다.

서프비치
거북이 서프바
파타고니아
데스커 벽화

해변에 어울리는 여러 탈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머스탱과 같은 머슬카나 올드 BMW를 발견할 수 있었고 자기 입맛대로 개조한 오토바이도 자주 보였습니다. 멋진 그래픽이 프린트된 서핑 보드를 구경하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클럽 앞 오토바이

거리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그래픽도 매력적입니다. DJ나 래퍼의 공연 포스터도 여기저기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아티스트가 남긴 벽화 일러스트나 공유 오피스를 운영하는 데스커의 벽화가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듭니다. 해변에 어울리게 잘 꾸며진 서핑샵과 음식점의 간판과 공간도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래픽이 문화와 자연을 잘 표현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연 포스터
매력적인 서핑 샵 타일러서프
타일러서프 가게 안에 있는 기타
가미 양양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일러스트
우체통조차 서핑 보드
여러 이벤트를 여는 데스커

양양은 코로나로 서핑을 하러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며 입소문을 탔습니다. 서울-양양 고속도로가 열리면서 더 많은 사람이 양양을 찾았고 코로나 선셋 페스티벌과 같은 대규모 파티가 열리면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양양의 서핑 문화를 주도했다고 볼 수 있는 ‘서피비치’를 만든 박준규 대표는 보라카이 같은 해변을 만들고 싶었다고 합니다. 광고 회사와 신용카드 자회사에서 일했던 박준규 대표는 부산의 해안 문화에서 영감을 받아 동해안에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지역만의 독특한 개성을 살려 활성화한 글로컬 서비스의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식재료와 주스 등을 강원도산 제품을 사용하려고 노력한다고 하네요.

욕망이 지글거리는 밤

양양의 밤은 시끌벅적했습니다. 코로나 이후 늦은 시각까지 노는 것 자체가 없어졌다 생각했는데 새벽까지 길거리의 사람이 줄지 않았습니다. 주말이 아닌 월요일까지도 오가는 사람이 많아 놀랬습니다.

중심부인 삼거리에서 호객꾼이 못을 박는 게임을 하며 사람을 모읍니다. 문을 활짝 열어 둔 포장마차 스타일의 가게는 항상 자리가 가득차 있었습니다. 근처에는 발리의 유명한 클럽인 ‘핀즈’의 축소판 같은 클럽도 있었습니다. 가운데는 수영장이 있고 비싼 고급 술을 서빙할 때는 폭죽이 함께 나왔습니다. 바로 옆 지하에서는 둔탁한 힙합 비트가 흘러나왔습니다.

이비사를 벤치마킹했다고 하는데 여러모로 아쉬웠습니다. 이비사는 아주 오래 전부터 히피들이 자리를 틀었고 애시드 하우스와 레이브 음악 열풍에 힘 입어 재능 있는 DJ와 함께 성장했습니다. 클럽은 음악이 정말 중요한데 옛 유행가를 어설프게 짜깁기한 리믹스만 넘쳤습니다. 스피커 품질도 좋지 않아 고음은 찢어지고 저음은 웅웅거려서 아쉬었습니다. 컨테이너로 만든 가건물은 어딘가 성의 없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서사 없는 자본은 이런 느낌을 주는구나 싶었습니다.

갉아먹히고 있는 서핑 컬쳐

낮에 볼 수 있었던 건강한 에너지가 한 지역 때문에 오명을 얻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인구 해변은 바다와 서핑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좋은 곳도 많았지만 많은 사람이 몰리는 술집들은 강남 어딘가에 있는 클럽이나 홍대 인근 포장마차 같았습니다.

멋진 몸을 자랑하고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아 만나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몇몇 가게는 부정적인 이슈에 올라타 지역 문화에 기여하는 것 없이 소비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자극적인 소재를 찾아 온 유튜버들과 유흥을 찾아 오는 손님들만 가득 찬다면 양양은 순식간에 슬럼화가 될 것입니다. 관광객이 줄어들면 가건물을 빼고 또 다른 지역에 유흥가를 만들겠죠.

양양의 다른 지역에서는 쾌적하고 건강한 서핑, 파티 문화가 느껴져서 더 안타까웠습니다. 과연 양양은 앞으로 어어떻게 될까요? 그래도 여전히 서핑 컬쳐를 곳곳에서 느낄 수 있어 좋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다음 빅 웨이브에 다시 크게 도약하는 글로컬 브랜드가 되리라는 믿음으로 다시 방문해야 겠습니다.

데스커 이번 일러스트 GOOD
길에 있는 영화관
정체불명의 모래 조각
페스티벌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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