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 느긋하게 구름을 걷는 코끼리

고대부터 현대까지 수많은 이야기로 가득한 방콕을 뒤로하고 북쪽으로 향했습니다. 치앙마이는 여유와 휴식의 도시로 잘 알려져 있지요. 짧은 일정 안에 방콕을 최대한 즐기려다 보니 쉬지 않고 도시 곳곳을 뛰어다니게 되었고, 뜨거운 햇살까지 더해져 온전히 몰입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북적이는 방콕을 떠나 한층 느긋한 디지털 노마드의 성지, 치앙마이로 향했습니다.

짧은 비행 후 도착한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차로 10분 남짓. 규모는 작고 아담하지만 도착하자마자 묘한 편안함이 느껴졌습니다. 오토바이가 주요 이동 수단인 도시라면 으레 빠른 속도와 경적 소리가 먼저 떠오르기 마련이지만, 치앙마이에는 그런 소란스러움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느린 속도로 조용히 움직이고, 불필요한 소음 없이 도시가 고요하게 흘러갔습니다. 시원한 날씨와 저렴한 물가 덕분에 부담 없이 마사지를 받고 맛있는 음식도 즐기며 한층 더 여유로워졌습니다. 모든 면에서 여행자가 쉬어가기에 이상적인 도시였습니다.

느긋한 올드 타운

올드 타운은 치앙마이를 세운 왕 멩라이가 수도를 천도하며 세운 지역으로, 태국어 이름 그대로 ‘새로운 도시’였지만 지금은 500년 동안 북타이 란나 왕국의 수도였던 고대의 시간을 고스란히 품고 있습니다. 낮고 넓게 트인 하늘 아래 오래된 건물들이 이어지고, 산 능선에 걸린 구름과 느리게 움직이는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도시 전체의 속도를 늦추며 시간이 편평해진 듯한 느낌을 줍니다.

해자를 건너 성벽 안으로 들어가면 과거의 요새에 진입한 듯한 감각이 선명하게 다가오는데, 정사각형 구조의 성벽과 성문이 명확히 그려져 있어 다른 유적지보다 ‘요새 속 세계’라는 인상이 특히 강합니다. 그 안에서 몇 걸음 걷는 것만으로도 묘하게 새로운 세계에 들어선 듯한 기분이 듭니다.

치앙마이 올드타운에는 란나 왕국의 역사와 불교 문화가 응축된 대표 사원들이 밀집해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왓 프라 싱은 금빛 장식과 란나 양식의 목조건물이 인상적이며 순례지로도 사랑받습니다. 왓 체디 루앙은 거대한 벽돌 석탑이 도시의 과거 영광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치앙마이에서 가장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합니다. 도시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인 왓 치앙만은 초기 치앙마이의 건축과 고대 불상을 그대로 간직해 역사적 가치를 느끼게 합니다. 검은 목조 전각이 특징인 왓 록 몰리는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로 대비되며, 티크 목재로 지어진 왓 판 타오는 화려함 대신 고풍스러운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사원마다 시대와 스타일이 크게 달라 사원 디자인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습니다.

자연 속 코끼리 만나기

치앙마이는 태국 북부의 역사·문화 중심지이자, 코끼리와의 깊은 관계로 유명한 도시입니다. 특히 옛 란나 왕국 시절부터 코끼리는 전쟁·수송·삼림 작업·왕실 의례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으며, 치앙마이는 코끼리 조련사(마후트) 문화와 코끼리 보호 문화를 모두 이어온 지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과거에는 치앙마이 주변의 울창한 숲이 목재 산업의 중심지였고, 코끼리들은 원목을 옮기는 데 필수적인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벌목 산업이 쇠퇴하고 동물권 인식이 높아지면서 코끼리를 관광 쇼·트래킹 용도로 소모하던 구조에 대한 비판이 거세졌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치앙마이 일대에는 학대 없는 보호형 사파리와 코끼리 생태공원이 등장했고, 현재는 지속 가능한 관광의 중요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코끼리 타기 대신 먹이 주기·목욕·산책·치료 관찰·구조 스토리 교육 등 코끼리의 자연스러운 생활을 존중하는 방식을 채택합니다. 많은 개체는 불법 서커스 산업·벌목·불법 관광지에서 구조된 코끼리로, 방문자는 단순 관람객이 아닌 보호에 참여하는 참여자의 형태로 경험합니다.

반짝이는 창작자의 아지트

치앙마이는 북태국의 수공예 문화로 특히 유명하며, 오랜 세월 장인들의 기술과 지역 정체성이 살아 있는 도시입니다. 은세공, 목조 조각, 직조·자수, 도자기, 우산 공예 등이 대표적이며 단순 기념품을 넘어 생활용 예술에 가까운 높은 완성도를 자랑합니다.

올드타운의 선데이 마켓과 타패 게이트 주변 야시장, 치앙마이 야오라이, 님만의 아트마켓 등에서는 장인·디자이너들이 직접 만든 공예품을 선보이며, 소비보다 ‘만든 사람의 이야기’를 경험하는 분위기가 짙습니다. 수공예와 시장이 공존하는 방식 덕분에 치앙마이는 여전히 손으로 만든 물건과 느린 노동의 가치를 현대 도시 안에 자연스럽게 이어가고 있습니다.

치앙마이는 아시아에서 가장 대표적인 디지털 노마드 도시 중 하나로, 느린 속도의 생활문화와 높은 작업 효율이 공존하는 환경을 제공합니다. 저렴한 생활비, 안정적이고 빠른 인터넷, 장기 체류자 친화적인 숙소, 카페·코워킹스페이스 중심의 작업 생태계가 자연스럽게 노마드 문화를 성장시켰습니다. 님만해민과 올드타운에는 콘센트와 와이파이를 갖춘 카페가 밀집해 있으며, 스타트업·프리랜서·크리에이터가 모이는 커뮤니티 행사도 활발합니다. 해외 거주자가 많아 영어 사용 장벽이 낮고, 일과 여행·요가·명상 같은 웰니스가 일상적으로 섞여 있어 ‘일을 위한 삶’이 아니라 ‘삶 속에서 일하는 방식’을 실천하기 좋은 도시입니다. 이 여유롭고 창조적인 분위기는 치앙마이를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전 세계 디지털 노마드의 거점으로 자리잡게 했습니다.

반가운 건물 중 하나는 TCDC(Thailand Creative & Design Center)였습니다. TCDC는 태국 정부가 창의 산업과 디자인 역량 강화를 위해 설립한 창조혁신 센터로, 치앙마이의 디자인·공예·콘텐츠 산업 허브 역할을 합니다. 대규모 디자인 라이브러리, 소재 아카이브(Material Library), 공동 작업 공간, 전시·세미나 공간을 갖추고 있어 디자이너, 아티스트, 스타트업, 학생, 메이커들이 함께 아이디어를 탐구하고 교류하는 장소로 활용됩니다. 치앙마이의 수공예와 로컬 디자인 문화를 현대적으로 연결하는 프로젝트도 활발하며, 전통 공예·문화 기반의 비즈니스와 글로벌 크리에이티브 생태계를 잇는 플랫폼으로 평가받습니다.

일과 휴식에 관해

치앙마이는 천천히 쉬어가도록 허락하는 도시였습니다. 아무도 보채지 않고, 나 역시 스스로를 다그치지 않게 되면서 한 달 살기가 왜 유행했는지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잘못하면 정말 시간 감각을 잃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 여유가 깊게 스며 있습니다.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가게가 특별히 많은 곳은 아니지만 생활에 필요한 것은 충분히 갖춰져 있고, 물가가 저렴해 돈에 대한 걱정이 줄어드는 것도 마음을 자유롭게 했습니다. 창작자들이 곳곳에 모여 있어 즐길 거리가 풍부하고,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서로 섞이며 다양한 활동이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점도 매력적이었습니다. 느리게 흐르는 구름에 나도 함께 올라탄 듯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다음에는 더 오래 머물고 싶다는 마음이 든 도시입니다.

박종민
프리랜서에서 유니콘급 스타트업 헤드 오브 디자인까지. 18년 넘게 브랜드와 프로덕트를 디자인하며 임팩트를 만들어 왔습니다. 현재는 디자인 나침반 CEO이자 편집장으로서 비즈니스 임팩트를 내는 디자인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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