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디자인, 건강한 즐거움(Healthy Pleasure)’를 담다

최근 건강에 관한 관심이 커지면서 각종 ‘제로’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제로’는 몸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요소를 최소화하거나 아예 없앤 상품을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소비자가 기존에 먹던 음식의 맛을 유지하면서 칼로리, 당, 알코올 등을 제거한 상품에 자주 쓰입니다. 처음에는 체중 감량을 위한 다이어트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건강한 삶을 위한 ‘헬시 플레저(Healthy Pleasure)’로 발전했습니다.

‘제로’라는 것은 무언가가 빠졌다는 의미를 전달해야 합니다. 브랜드의 정체성이 강하게 드러내야 하는 패키지에서 무언가를 뺀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번 아티클에서는 어떤 브랜드가 제로 브랜딩을 영리하고 탁월하게 디자인했는지 살펴봤습니다.

펩시 제로, 제로 브랜드의 선두주자

펩시는 오래 전부터 제로 음료를 연구했습니다. 2006년 펩시 맥스를 출시했으나 실패했고 2009년 펩시넥스를 재출시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판매가 중단 됐습니다.

제법 긴 시간이 지난 2024년 초, 건강에 관한 사람들의 관심이 커지자 펩시는 기존 콜라에 라임향을 더한 ‘펩시 제로슈거 라임향’을 출시했고 출시 40일 만에 약 200만 개가 팔리며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소비자들은 기존 펩시의 맛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제로슈거 특유의 비어 있는 맛을 라임이 깔끔하게 마무리 했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펩시 본사가 아닌 롯데칠성음료에서 개발하고 제안했다는 것입니다.

펩시 맥스(2006), 펩시 넥스(2009), 펩시 제로 라임향(2024)

패키지 디자인은 펩시가 처음 제로 음료에 도전했던 맥스부터 사용했던 검정색을 사용합니다.

제로 이전에 비슷한 상품인 ‘다이어트 콜라’가 시장에 나름의 자리를 잡았습니다. 다이어트 콜라는 체중을 감량하려는 고객에 집중했기 때문에 하얀색으로 가벼운 느낌을 표현했습니다. 이와 다르게 제로는 심미적인 몸매 관리보다 건강하지만 맛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펩시는 자사를 상징하는 짙고 푸른 색에서 색상을 뺐습니다. 매대에서 눈에 띄기 위해서는 패키지의 전체 배경 색이 중요한데 펩시의 상징적인 로고는 남기고 검은 배경으로 채웠습니다. ‘라임향’ 시리즈에서는 흑맥주 같은 무거운 느낌을 줄이기 위해 라임 맛을 표현하는 높은 대비의 색을 부분적으로 배치했습니다. 이러한 디자인은 강렬한 맛과 확실한 효능을 설득력 있게 전달합니다.

펩시의 제로 음료가 성공하고 음료 패키지에서 검정은 곧 제로를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코카콜라가 빠르게 비슷한 제품을 출시했고 닥터 페퍼, 세븐 업 등 다른 경쟁 음료 브랜드에서도 제로 라인업을 출시했습니다. 펩시는 제로를 중심으로 브랜드를 재편하고 시각 정체성을 정립하는 등 시장 주도권을 유지하면서 코카콜라라는 시장 리더와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코카콜라 제로, 칠성 사이다 제로, 닥터 페퍼 제로

롯데 제로, 달콤한 디저트를 위한 제로

롯데 제과는 건강 관리 유행에 맞는 “제로(Zero)” 시리즈를 선보였습니다. 제로 시리즈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과자나 아이스크림의 맛을 유지하면서 당을 크게 줄인 제품입니다. 설탕 대신 에리스리톨과 말티톨을 대체감미료로 사용했습니다.

출시 초기부터 소비자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며 큰 인기를 끈 제로는 론칭 직후 2022년 하반기에만 16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습니다. 이후 매년 지속 성장해 2024년에는 500억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해 출시 첫해 대비 약 214% 신장한 실적을 달성했다. 지난해 10월 선보인 신제품 ‘제로 초코파이’는 출시 50일 만에 600만봉(50만갑)이 판매됐으며 특히 인도에서 큰 성공을 이뤘습니다.

롯데 제로

패키지 디자인은 ‘제로’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브랜드를 정립했습니다. 식품의 모양이나 맛을 강조하기 보다 ‘ZERO’라는 글자와 ‘설탕제로·당류제로’가 돋보이게 디자인했습니다. ZERO 영문을 가운데에 크게 배치하고 하단에 외곽선이 따진 음식 사진을 배치했습니다. 쿠키, 초콜릿 위주의 상품군이 자주 쓰는 짙은 갈색을 사용하는데 연한 베이지 색을 사용한 ‘ZERO’가 비교적 가볍게 느껴집니다.

인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초코파이는 제로에서도 짙은 빨강색을 사용하며 바닐라 계열의 신제품에는 하늘색이 조금씩 추가되었습니다.

마치 이마트의 노브랜드 브랜딩 전략과 비슷합니다. 노브랜드는 노랑색과 검정색을 이용한 패키지로 색을 제외하고는 브랜드를 연상시키는 요소를 거의 넣지 않았습니다. 정교하게 계산된 디자인으로 낮은 가격을 위해 아무것도 더하지 않았다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이는 지금 롯데의 제로 브랜딩과 노리는 것과 비슷한 효과입니다.

롯데 제로

무알콜 맥주, 건강을 위한 비움

무알콜 맥주는 알코올 함량이 0.5% 미만인 맥주를 일컫는 용어입니다. 최근 건강과 웰빙 트렌드에 힘입어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일반 맥주와 비슷한 제조 공정을 거치지만 발효 과정에서 알코올을 제거하여 만듭니다. 칼로리도 일반 맥주보다 낮은 편입니다.

하이네켄 0.0은 무알콜 맥주의 선구자로 2017년 출시 이후 전 세계 논알콜 맥주 시장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알코올 함량이 0.03% 미만으로 법적으로 비알콜성 성인 음료로 분류되며 식품 유형은 혼합음료에 해당합니다. 이외 무알콜 브랜드로는 버드와이저 제로, 애슬레틱 브루잉 컴퍼니, 기네스 제로, 순토리 올-프리 등이 유명합니다.

무알콜 맥주의 패키지는 파랑색과 ABV(Alcohol By Volume)를 이용해 무알콜을 표현했습니다. 선두주자인 하이네켄은 브랜드 아이덴티티인 초록색을 대폭 줄이고 파랑색 배경색을 가득 채운 캔 디자인을 사용했습니다. 푸른 색은 쓴 맛보다 시원하고 청량한 맛에 가까울 것이라는 느낌을 줍니다.

하이네켄 0.0, 기네스 제로, 선토리 올-프리

직관적으로 알코올 도수를 표현하기도 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술은 법적으로 도수를 표현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때 ABV(Alcohol By Volume)이라는 0.0% 형태의 단위를 사용합니다. 논알콜 맥주는 0.0%, 0.00%와 같이 알코올이 없음을 패키지 전면에 표현합니다.

하이트 제로, 카스 제로, 클라우드 제로

색에 의미를 만든 대단한 브랜드들

복잡하고 추상적인 개념을 표현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건강한 즐거움’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고 디자인으로 표현하기는 더 어렵습니다. 이번에 살펴본 브랜드들은 자신에게 맞는 전략으로 ‘건강한 즐거움’을 표현했습니다.

식품은 맛의 자극과 연관지어 강렬한 색을 사용하는 것이 보편적입니다. 이러한 특성을 유지하면서 뺄셈을 표현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디자인이죠. 기존에 있던 요소를 제거했다는 것을 표현하려 하면 보통 공백이나 하얀색이 먼저 떠오릅니다. 하지만 이는 자칫 아무것도 없다는 것으로 오해될 수도 있습니다.

펩시 제로, 롯데 제로, 무알콜 맥주는 기존 시장에서 소비자가 인식한 그래픽 규칙에서 색을 변형해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펩시는 검정색을 당이 없는 청량음료와 동의어로 만들었고 롯데는 베이지 색과 ZERO와 달콤한 다과를 동의어로 만들었고, 하이네켄은 파랑색을 무알콜과 동의어로 만들었습니다. 색 그 자체가 주는 인상을 넘어 의미를 만든 것이죠. 역시 디자인은 시장에서 소비자가 받아들이는 맥락을 이해해 풍성한 의미를 간결한 표현으로 담아내 놀라운 성과를 만드는 강력한 전략입니다.

박종민
프리랜서에서 유니콘급 스타트업 헤드 오브 디자인까지. 18년 넘게 브랜드와 프로덕트를 디자인하며 임팩트를 만들어 왔습니다. 현재는 디자인 나침반 CEO이자 편집장으로서 비즈니스 임팩트를 내는 디자인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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