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이불 밖은 재밌었다.

2021-retrospect

2021년이 끝나갑니다. 모두를 힘겹게 한 코로나는 끝나질 않네요. 지금 다니는 회사는 여행 회사기 때문에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이런 상황에도 개인, 팀, 조직의 성장은 멈추지 않았고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편안한 이불 밖이 무서운 내향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소극적인 면이 많았는데 올해는 자주 이불 밖으로 나섰습니다. 의외로 세상은 안전했고 재밌었습니다. 이전에는 절대 알 수 없었던 것을 배울 수 있었고 성장에 맛을 들이니 가속도가 붙었던 것 같습니다. 익숙한 주제인 디자인과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의 범위를 벗어나 더 큰 관점을 얻을 수도 있었고요. 기반이 단단해지고 시야가 넓어진 한 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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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밖에서 만난 사람들

가장 먼저 사람이 떠오릅니다. 연구자처럼 문제를 파고들어 해결법을 찾는 것을 좋아하지만, 목표가 높아질수록 혼자서는 절대 넘을 수 없는 한계를 느꼈습니다. 나 자신과 조직의 성장을 위해 배움이 필요했습니다. 가장 빠르게 배울 방법은 나보다 먼저 나아간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습니다. 배울 점이 있는 분이라 생각한 디자이너분 중 연락이 가능한 분들께 연락을 돌렸고, 다행히 한 분도 빠짐없이 흔쾌히 만남을 수락해주셨습니다. 목표는 50명을 만나는 것이었는데 올해 약 100명의 새로운 분을 만났습니다.

수없이 많은 디자이너분을 만났습니다. 대학생, 취준생, 스타트업 1인 디자이너, 중견 회사 디자이너, 디자인 리더, 디자인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많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학생 분들과 스타트업의 1인 디자이너분들께 도움을 드리기 위해 많이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제 경험을 전달한다고만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여러 디자이너분들로부터 새로운 관점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살아있는 에너지와 예상치 못한 생각들은 색다른 영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디자인 리더와의 만남은 특히나 위로가 많이 됐습니다. 나만 고민하는 것이 아니구나. 다들 고통받고 있구나. 그래도 이 씬에서 변화를 만들기 위해 정말 다들 노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사는 다르지만 우리 모두 산업 안에서 디자인의 가치를 증명하고 더 큰 성취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동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직접 배우진 못했지만 많은 친구에게 존경받는 옛 교수님과 만남도 기억이 납니다. 교육에 대한 깊은 애정과 학교에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 듣는 것만으로도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학교에 관해서는 이미 성장할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만으로도 큰 에너지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아직도 머릿속에 맴돕니다. 존경하는 선배의 천천히 오랫동안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는 말은 큰 응원이었습니다.

과거에는 밖에 돌아다닐 시간에 지식을 쌓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능력을 키워 결과로 증명하는 것만이 나를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은 노는 것이며 내 역량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여러 계기로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게 얼마나 큰 착각인지 깨달았고, 첫 10명까지는 정말 어려웠지만 어느 순간 마음의 벽을 무너뜨리고 온전히 만남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어찌 보면 지금까지 삶의 방식 중에 가장 크게 변한 것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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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밖에서 배운 리더십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만큼이나 크게 성장했다 생각하는 것은 리더십입니다. 처음 리더가 되었을 때, 리더십이 무엇인지에 대해 개념도 없었기 때문에 문제를 만났을 때 감정적으로 매.우. 힘들었습니다. 현재 있는 회사가 리더십에 대해 강의를 열고 다른 리더들과 토론하면서 빠르게 성장할 수도 있었습니다. 다행히 이런 기회가 있어 ‘리더십은 학습 가능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고 무던히 노력해 나름의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올해는 위기일 때 어떻게 사람들을 이끌어야 하는지를 배웠습니다. 모두 알다시피 코로나로 인해 업계 상황은 안 좋아지고 그 영향은 자연스럽게 팀에게까지 미쳤습니다. 그 상황 속에서도 팀이 패배주의나 냉소주의에 빠지지 않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서 성과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팀을 운영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인 ‘성장’이라는 키워드를 지키기 위해… 개인의 목표를 위한 성장과 조직의 목표를 위한 성장을 교집합을 찾고 실행하기 위해… 지금 문장으로 쓰면서도 저 문장 안에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는지 머릿속에 슬라이드쇼가 빠르게 지나갑니다.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위기 상황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 일은 정말 큰 경험이라 생각합니다. 믿고 따라준 팀원분들이 없었다면 아무 일도 없었겠죠. 돌아볼수록 감사한 마음만 듭니다.

조직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도전도 했습니다. 디자인은 특히 다른 조직과 협업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협업이 중요합니다. 회사가 사업 상 제공하는 가치가 무엇이며 어떤 요소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디자인은 큰 영향을 받죠. 내 팀만을 위한 목표를 세우고 고집부리는 것은 조직 전체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생각의 범위가 점차 커졌습니다. 팀원, 팀, 팀장, 상위 조직, 경영진, 회사…개념이 계속 커지면서 우리가 왜 이런 행동을 하고 있지? 란 질문까지 나아갔고 그 끝에는 ‘고객’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하는 행동이 고객에게 어떤 가치를 주는가? 라는 질문을 거의 숨 쉬듯이 했던 것 같습니다. 말만으로는 결과로 연결되지 않으니 다양한 행동을 해보기도 했고요. 팀 내부에는 고객의 프로덕트 사용 경험을 설계하는 디자인 팀은 고객 경험에 미친 집착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다니며 스스로도 고객에 미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내년에는 정말 고객에 미친 사람이 되고 싶네요.

그리고 회사의 범주를 넘어 디자인 씬에 대한 관점도 경험했습니다. 혼자서 연구할 때는 당연히 다른 변수가 없기 때문에 쉽고 편하고 재밌게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많은 사람과 회사를 지켜보면서 정말 다양한 문제가 있고 공감대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마다 조직 차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 저변에 한국 IT 씬에서 디자인에 대한 인식과 디자이너 자신의 가치 증명이 깔려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디자인이 기술이 될 순 없을까? 왜 디자인은 개발 같이 기술 컨퍼런스가 없을까? 왜 디자이너 연봉은 개발자만큼 못 받을까? 왜 실력 있는 시니어 디자이너가 이렇게 적을까? 하반기 들어 한국 IT 씬에서 디자인을 한다는 환경 자체에 더 많이 고민하게 된 것 같습니다. 집단과 사람보다 아이디어가 더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고 아이디어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시니어, 리더가 될수록 디자인 커뮤니티에 노력을 기울이기가 쉽지 않은 환경인 것 같습니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과거보다 정말 많이 좋아졌지만 여전히 우리가 강한 결속력을 가지고 임팩트를 만들 수 있는 더 큰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스스로 증명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요? 무엇이 증명했다는 증거가 될까요? 요즘 가장 머릿속 지분을 많이 차지하는 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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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밖으로 나가는 디자인 나침반

디자인 나침반 프로젝트는 어느새 시작한 지 13년이 되었습니다. 디자인 언어를 나만의 방식으로 정리한 것에서 출발해서 지금은 다양한 방법으로 지식의 원을 넓히고 있습니다. 올해는 주로 블로그에 글쓰기를 많이 했는데요, 2021년에는 59개의 글을 썼습니다. 작성 수를 목표로 정하진 않았지만 한 달에 약 4~5개의 글을 썼습니다. 꾸준하게 프로젝트를 이어가기 위해 일주일에 1개는 꼭 쓰자는 다짐은 지켰습니다.

브런치 구독자는 2,961명입니다. 글을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공유했던 플랫폼인 만큼 애정이 있는 곳입니다. 기능적인 아쉬움에 개인 블로그로 옮긴 이후부터는 구독자가 늘어나는 속도가 줄어들었습니다. 아쉽기도 하지만 원하는 기능이 없기도 하고 글을 쓰는데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없기 때문에 결국 마음대로 개발할 수 있는 웹사이트로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올해 개인 블로그 뷰 수는 3배 성장했고 방문자는 작년보다 5배가 성장했습니다. 새롭게 확장한 커리어리는 구독자 4,629명을 달성했고 뉴스레터 서비스인 메일리는 735명, 페이스북 페이지는 514명의 좋아요를 달성했습니다. 생각한 목표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이전보다는 크게 성장한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방식의 콘텐츠를 실험했습니다. 현재 IT 씬에서 디지털 프로덕트 디자이너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글을 많이 썼습니다. 주로 디자인 기초 지식을 많이 다뤘고 회사가 처한 상황이나 내가 가진 역량에 따라 달라지는 다양한 맥락에 대한 디자인 관련 글을 썼습니다.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를 해보기도 하고 좋은 디자인 사례에 대해서도 정리해봤지만 오랫동안 지속하진 않았습니다. 역시 자신이 애정을 쏟을 수 있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에 관해 쓰는 것이 오래 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은 정량 목표에 대해 그렇게 집착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고요. 만약 그랬다면 “디자인 불변의 법칙 TOP 5” 같은 것을 더 많이 썼어야 했나 싶기도 하네요.

올해 뜻깊게 생각하는 것은 디자인 나침반 위키피디아를 만든 것입니다. 처음 대학교에 들어갔을 때부터 생각해오던 것을 드디어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은 먹고살기도 바빠서 위키를 설치하고 관리할 수 있는 지식을 쌓기가 어려워서 계속 미뤄지던 프로젝트였는데 어느 순간 스파크가 튀어 순식간에 만들었습니다.

대학에 진학하기 전에는 디자인과 관련해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아예 알 수조차 없었습니다. 운이 좋게 좋은 사람들과 지식이 있는 대학교에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던 암흑 속을 걷던 때가 기억납니다. 착한 해외 블로거들이 체계적으로 정리해준 글을 바탕으로 UI/UX를 접하고 성장한 저에게 언제나 지식 그 자체는 자유롭게 공유되면 좋겠다 생각해 왔었죠. 지금은 아무 정보가 없지만 내년에 쌓아나갈 것을 생각하면 두근거립니다. 앞으로 얼마나 시간이 걸릴진 모르겠지만 의미 있는 커뮤니티가 될 수 있다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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