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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디자인, 나의 우주정거장

종종 왜 그렇게 글을 열심히 쓰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 반응은 괜찮은지, 퇴근하고 그런 거 할 에너지가 도대체 어디서 나오냐고 물어볼 때도 있고요. 스스로도 신기합니다. 가끔은 퇴근하고 집에 오는 길에 ‘오늘은 어떤 것을 써볼까’ 하는 생각에 설렐 때도 있습니다. 글쓰기가 설레다니… 언제부터 이랬나 싶습니다.

글을 쓰는 이유는 공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아직 내가 모르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타인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만 나의 지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의 지식을 기록하지 않으면 측정할 수 없고 측정하지 못하면 성장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치밀하게 글을 썼던 것 같습니다.

기록을 시작하고 10년이 지났습니다. 에버노트, 개인 위키, 브런치, 깃헙 블로그, 워드프레스 등 다양한 툴을 거쳤네요. 잊어버려서 방치될 때도 있었고, 한 달 내내 글을 쓸 생각만 할 때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문득 나는 왜 블로그를 만들고 운영하고 있는지, 나의 디자인은 어딜 향해 가고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내 디자인의 시작

남들이 안 하는 것을 하고 싶어 예체능을 선택했습니다. 공부만 하는 친구들이 모인 고등학교에서 벗어나 다른 것을 하고 싶어 미대에 진학했습니다.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대학 시절은 오히려 더 많은 의문이 생겼습니다. 도대체 디자인은 무엇일까? 왜 명쾌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걸까? 잘하는 사람은 잘하고, 못하는 사람은 왜 못하는 걸까? 비헨스에서 좋아요를 잔뜩 받는 작품과 좋아요를 못 받는 작품은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 좋아요가 좋은 디자인의 척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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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질문이 머릿속을 휘저었고 답을 찾기 위해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살았습니다. 디자인 팻말이 적힌 서고에서 제목에 시-각, 디-자-인이 한 톨이라도 적힌 책이 있으면 한데 모아 탑을 쌓고 읽었습니다. 그때 바로 이해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어렴풋이 이해가 될 때까지 읽는 수밖에 없었고, 간신히 얻을 수 있었던 지식은 시각 언어와 인지 심리학이었습니다. 청각 언어와 시각 언어의 차이에 대한 언어적 관점과 눈의 작용과 자극과 완화 등 신체적 관점의 디자인을 콩알만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사용자 경험

희미하게 뭔가 보일 것 같다 싶으니까 졸업이었습니다. 일단 먹고살아야 하니까 브랜딩, 일러스트레이션, 웹 디자인와 같은 여러 방면에 프리랜서 작업을 시작했지만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처음의 그 질문들은 또 순식간에 성큼 다가왔습니다. 디자인은 정말 주관의 영역일까? 측정할 수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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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도중 The Design of Everyday Things이라는 책과 Don’t make me think라는 책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었습니다. 사실 UX란 말에 선입견이 있었습니다. UX란 말은 Apple이 제품을 더 팔기 위해 만든 유행시킨 개념이고 돈 많은 부자들이나 쓰는 사치품이라고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몰랐던 어리석은 시절이었죠. 지금은 사과 농장을 차렸지만… 사용자 중심 디자인이라는 것이 막 떠오르던 때였기 때문에 잘 짜인 정보를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다양한 책과 해외 블로그를 이 잡듯이 뒤졌고 이 개념이라면 더 사용자로부터 다양한 피드백을 들을 수 있고 설득력 있는 시각 디자인 언어를 갖출 수 있겠구나 라는 예감이 들었었습니다. 

브랜드 경험

그렇게 사용자와 빠르게 커뮤니케이션하면서 디자인을 할 수 있는 스타트업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우리가 가지고 있던 기술은 단순했습니다. 저전력 블루투스와 스마트폰의 GPS를 이용해 위치를 측위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미 비슷한 기술로 물건을 찾는 제품은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도처에 널려 있었죠. 돈도 없고 시제품도 없었지만 이 기술로 우리가 만들 가장 멋진 것을 상상해 보기로 했습니다. 단순히 할 수 있으니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사람들의 삶을 바꿀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죠. 그렇게 당시 우리 팀은 미아를 방지하는 스마트 팔찌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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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제품이 만들어지지도 않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크게 응원해주었고 첫 제품은 도저히 물량을 맞출 수 없을 정도로 주문이 밀렸습니다. 어마어마한 성공을 하진 못했지만, 이때 메시지가 가진 힘을 느낄 수 있었고, 브랜드가 어떤 것인지 스스로 정의를 내렸던 것 같습니다. 다른 브랜드와 확연하게 구분되면서, 만드는 사람이 꿈꾸는 멋진 상상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기록하고 공유하기

UX, BX 둘 다 참 멋지구나 생각하면서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생각한 대로 스타트업에서는 정말 빠르게 많은 것들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나름 다양한 성공과 실패를 경험했고 꾸준히 기록했습니다. 그때는 지금의 나를 기록하지 않으면 지금 이 순간의 생각을 모두 잊어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습할 수 있는 디자인을 위해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전 나의 상태를 꼼꼼하게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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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나와 같은 장애물에 막히지 않고 더 중요한 고민을 할 수 있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항상 ‘나는 아직 부족해’라는 생각과 부끄러움 때문인지 기록만 열심히 하고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바보 같지만 그때는 스스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몰랐던 것 같습니다.  혼자 낑낑대다가 우연한 기회로 브런치라는 서비스에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부끄러웠지만 응원해주시는 분들 덕분에 조금씩 용기를 갖게 되었고 이제는 자연스럽게 생각을 글에 담고 공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단순히 혼자 기록하는 것을 넘어 다양한 피드백을 받으면서 성장할 수 있게 된 것 같고요.

나만의 우주 정거장

10여 년의 시간 동안 이런저런 경험을 한 것 같습니다. 아직도 스스로 설명하고 학습할 수 있는 디자인 언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동그라미와 네모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다음은 디자인을 어떻게 하면 배워서 잘할 수 있는지가 궁금했고, 그다음은 디자인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궁금했습니다.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나름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저만의 답을 하나씩 구축해왔고 이 모든 과정이 마치 나만의 우주 정거장을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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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불변의 진리는 없겠지만, 최소한 제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정의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저에게 미학이란 무의식적인 만족감이며, 디자인은 소통의 설계입니다. UX는 Delight Done이며 BX는 Unique Desire입니다. 이렇게 단어를 정의하고 표현하는 과정이 즐겁고, 다시 태어나도 디자인이 하고 싶습니다. 이 멋진 언어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디자인이 싫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여전히 디자인이 궁금하고, 누구나 디자인을 하고 싶다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알려주는 지침이 되길 바랍니다. 말하기 낯간지러울 정도로 큰 꿈이지만, 저 멀리 보이는 빛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주를 항해하는 여행자들

올해도 거대하고 캄캄한 우주 속을 항해하는 기분이었습니다. 희미하게 반짝이는 최종 목적지를 향해 항해하다가, 멋진 행성 근처를 공전할 때도 있고 다른 우주선을 스쳐 지나갈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까지는 내 우주선을 만드는데 집중하느라 다른 세계를 많이 들여다보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제 나의 디자인을 돌아보다 보니, 다른 분들은 이 우주를 어떻게 항해하고 있는지 더욱 궁금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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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행을 만드는 회사에서 디자인하고 있습니다. 정말 지금까지 없었던 경험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디자인에 대해 고민하고 UX와 BX를 생각합니다. 본업 외에도 설명하고 배울 수 있는 디자인을 연구하는데 관심이 많습니다. 저와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으신 분이 계시다면 garadiansss@gmail.com로 연락해주세요.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라면 얼마든지 환영입니다.

어느새 2020년이 끝나가네요. 2021년에는 이 글을 다시 읽으면서 이만큼 왔구나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그럼 모두 12월 마무리 잘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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